노키아, 삼성·애플에 밀려 퇴출
첨단 디지털 시장은 혁신이 필수
올해 가장 주목 받는건 인공지능
예산 삭감 기초과학 연구 붕괴직전
후속 세대 투자 노벨상 꿈 꿀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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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인하대학교 교수·前 미래학회 회장
여러분도 알다시피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 품목 중 하나다. 인공지능(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AI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막대한 매출을 올리며 새로운 반도체 산업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 양산에 성공한 기업은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이를 소홀히 한 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한국의 가전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에서 자동차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 가전, 자동차 외에도 한국의 여러 산업 제품은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등장하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기 쉽다. 핀란드의 노키아는 제지업과 고무 회사에서 전자 통신장비 업체로 변신하여 휴대전화 시장에서 한때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스마트 폰 시대로 넘어가면서 애플과 삼성전자에 밀려 결국 퇴출당했다. 이처럼 첨단 디지털 시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는 혁신이 필수적이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디지털 기술은 단연 인공지능이다. 노벨 물리학상은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원리를 발견한 학자들에게, 노벨화학상은 단백질 접힘 구조를 예측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폴드'를 개발한 팀에게 수여되었다. 인공지능도 암흑기를 겪은 바 있다. 첫번째 암흑기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로 정부의 연구비가 끊기고 인재가 떠나갔다. 두번째 암흑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였으며 이 기간에도 연구자들은 연구비가 끊겼고, 대학원생들마저 떠났다. 그러나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튼 교수는 그 암흑기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백프로퍼게이션 알고리즘'을 개발해 인공지능 연구의 혁신을 일구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캐나다 정부가 기초과학 연구를 꾸준히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암흑기에 학생들이 떠나고 연구 주제는 학계에서 인기가 없었지만, 캐나다 정부는 힌튼 교수에게 연구비를 계속 지원했다. 이는 기초과학자들에게 지속적인 연구 기회를 제공하는 캐나다의 연구 문화 덕분이었다. 기초과학에 대한 꾸준한 지원은 미국, 영국, 유럽 등 과학 선진국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디지털 기술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르며 주류 트렌드를 형성했다. 거의 20년 동안 인기가 없었던 인공지능이 갑자기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이 흐름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메가 트렌드가 될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10여 년 전만 해도 오늘날처럼 인공지능 기술이 부상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래에 어떤 기술이 뜰지 모르기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은 어떠한가? 작년과 올해, 기초과학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기초과학 연구는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응용 연구를 우선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최근에 주목받는 분야나 상업화가 쉬운 연구에는 연구비가 몰리기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받기 힘든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제프리 힌튼 같은 연구자가 나오기 어렵다. 연구비 상황만 나쁜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끊임없이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자유전공 또는 무전공으로 1학년 학생을 뽑는 대학에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은 20%에서 30% 신입생을 무전공으로 뽑는 전형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에 인기 있는 공과대학에만 학생이 넘쳐나고, 기초과학 학과는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다. 이제 학문 후속 세대가 없어서 기초과학을 접어야 할 판이다. 과학에서 노벨상을 목표로 한다면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이어가는 연구자와 학문 후속 세대에게 10년 이상 연구비를 지원하는 문화가 필요하며 대학, 연구소, 대기업 등에서 기초과학 연구자들을 꾸준히 채용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은 요원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재우 인하대학교 교수·前 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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