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민족이동 기원 일컫는 '디아스포라'
인천, 韓 근대이민 출발지로서 특별한 좌표
재외동포 재통합으로 미래 나아가기 위해
이스라엘처럼 한국인 '귀환의 법칙' 고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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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BC 598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흥 강국인 칼데아 제국(신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유다 왕국을 공격한다. 이듬해 3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그는 유다의 왕과 백성들을 칼데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이후 두 차례나 더 가해진 공격으로 수많은 유다 사람들이 또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향했다. 그리고 해방될 때까지 60년간 4만5천여명으로 추정되는 억류민들이 메시아를 기다렸다.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유다 백성들의 강제 이주와 억류를 역사는 '바빌론의 유수(幽囚)'라고 부른다. 오늘날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일컫는 대규모 민족이동의 기원이다.

파종(播種)과 이산(離散)의 뜻을 가진 '디아스포라'가 비단 유대인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자행된 노예무역을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 이주하게 된 아프리카인들의 슬픈 역사가 있고, 19세기부터 동남아시아, 북미, 유럽 등지로 퍼져나가 각 지역에 차이나타운과 같은 중국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 차이니즈 디아스포라가 존재한다. 아이리시 디아스포라는 19세기 중반의 대기근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1845년부터 7년간 이어진 최악의 기근으로 100만명의 아일랜드인이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사망했고, 그만큼의 생존자들이 이민선에 올라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어느 민족의 디아스포라인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역사가 아닌 게 있겠냐마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야말로 참으로 눈물겹다. 구한말 국운이 기운 조국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다시 중앙아시아로 내몰리며 '차오셴쭈(조선족)'와 '까레이스키(고려인)'로 모진 세월을 살아냈다. 징용과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패전 이후에도 '자이니치(在日)'로 남아 차별과 모멸을 견뎌왔다. 해방 이후 '코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의 꿈 또한 눈물과 고통 없이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들이다.

어느덧 180여 개국 780만명에 이르는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에서 인천은 특별한 좌표를 갖는다. 근대 이민의 출발지로서다. 1902년 12월22일 121명의 한국인이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로 향한 이후 1905년까지 64회에 걸쳐 7천415명이 제물포항에서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열대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달픈 이민살이를 시작한 이들이 공식 이민 1세대다. 첫 이민자의 84%가 인천 사람들이고, 그들 대부분이 인천 내리교회 신도라는 사실은 근대 이민사에서의 인천의 장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소다.

한국인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이 역사적 공간 인천에서 기억을 반추하고 디딤돌 삼아 새로운 미래로 이어가기 위한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이틀 동안 인천광역시가 주최한 '디아스포라 도시브랜드' 구축을 위한 콘퍼런스는 5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어쩌다 첫 번째 세션의 좌장 역을 맡게 됐다. 발제와 토론을 이끌어가는 내내 도시 콘셉트 설정이나 브랜드 구축에 참 무감각하고 재주 없는 인천시가 이번엔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중한 논의의 결론을 끝내 '글로벌톱텐도시'로 몰아간 과정의 논리 비약이 옥에 티였지만.

발제를 맡은 한국조지메이슨대 롤랜드 윌슨 박사의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사회가 재외동포 디아스포라와의 재통합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선결해야 할 과제를 짚은 그는 특히 조선족, 고려인, 재일동포, 재미동포, 그리고 탈북민 등 거주지역이나 출신에 따라붙는 명칭과 그것에 내재된 오해와 편견, 부정과 선망, 정체성의 분리를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처럼 한국인 디아스포라를 위한 공식적인 '귀환의 법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은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었다.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 이제 물길을 바르게 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디아스포라, 인천'. 괜찮은 도시브랜드이지 않은가. 마침 재외동포청도 자리 잡은 인천이다.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