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기획전 자료 57건 선봬… 내달 27일까지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1735~1762). 영조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행동을 일삼던 그는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 반면 정조는 아들로서 그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한 인물을 두고서 핏줄로 얽힌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사도세자와 두 임금의 시선'에서는 이런 다층적인 인물인 사도세자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한다. 장서각 및 왕실 자료 소장 기관 자료 57건을 선정해,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명분과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왕으로 높여 받든 과정을 살펴본다.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됐다. 제1부 '효장세자의 사망과 영조의 슬픔'에서는 첫째 아들 효장세자(1719~1728)가 세상을 떠나자 요절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영조의 행록과 지문, 연보, 시 등을 만날 수 있다. 제2부 '사도세자의 탄생과 영조의 기대'에서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걸었던 기대가 혹독한 교육열로 바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세자는 영민한 면모를 보였으나, 10세 무렵부터 공부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실망과 분노가 커진 영조가 어린 세자를 훈계하며 지은 글 등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제3부 '사도세자의 일탈과 영조의 절망'에서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던 시기를 다룬다. 이 무렵 사도세자와 혜경궁 사이에서 태어난 세손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조는 세자가 아닌 세손에게 훈계의 글을 써주기 시작한다.
제4부 '영조의 결단과 영빈 의열의 현창'에서는 영조의 처분에 대한 정당성을 담은 사료를 다룬다.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가 아들의 죄상을 고하며 대처분을 요구하고, 이에 영조가 사도세자의 처분을 결심한 자료 등이 대표적이다.
제5부 '정조의 비애와 사도세자 추숭'에서는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정조의 기록을 담았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추숭 의지를 드러내며 시호와 존호를 올렸다. 아울러 그의 묘소를 현륭원(융릉)으로 이름 붙인다.
한편, 이번 전시는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