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법


우정·가족·대립하는 두쌍의 부부 등
평범한 사건서 '인생 사유' 이끌어내

특유의 매력적 대사·거침없음도 '묘미'
예절·야만·진정한 자아 등 긴 여운 남겨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일상의 평범한 사건들에서 인생에 대한 사유를 끌어내 재치있게 풀어내는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들이 희곡집으로 발간됐다.

발표한 희곡들로 몰리에르상·로렌스 올리비에상·토니상·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그랑프리 등을 수상한 세계적 극작가가 특유의 매력적 대사로 거침없이 풀어낸 이야기의 묘미를 이번 희곡집에서 느껴볼 수 있다.

■ 아트┃ 야스미나 레자 지음. 백선희 옮김. 뮤진트리 펴냄. 108쪽. 1만4천500원


1994년에 발표된 작품 '아트'는 피부과 의사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세르주가 흰색 가로띠가 보일 듯 말 듯한 흰색 그림을 20만 프랑을 주고 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항공 엔지니어인 마르크는 이에 경악하며 빈정대고, 또 다른 친구 이방은 두 친구를 중재하려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갈등이 터져 나가게 된다.

예술가들의 세계에 끼고 싶어하는 허영심, 편협한 기준으로 상대를 단정 짓는 오만함, 늘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세 친구는 이렇듯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예술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가진 친구들은 작품 하나를 두고 현대미술의 가치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이는 예술의 가치와 그에 대한 기준, 각자가 가지는 다른 생각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리고 결국 세 남자의 담론을 통해 드러나는 '우정'이라는 중심 주제가 유쾌하면서도 예리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극 '아트'는 올해 네 번째 시즌으로 관객들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 대학살의 신 ┃야스미나 레자 지음. 백선희 옮김. 뮤진트리 펴냄. 96쪽. 1만4천원


오는 12월, 5년 만에 다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오는 연극 '대학살의 신' 역시 2007년에 발표된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게 있어 보이는 제목과는 다르게 두 아이가 싸운 일로 만나게 된 두 쌍의 부부가 호의적 예의로 대화를 시작했다가 점점 유치찬란한 설전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그린다. 피해 아동 부부의 대립에서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의 대립으로 이어지는 작품은 갈팡질팡하는 논란들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드러나는 인간에 내재한 모순들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묘사했다.

작품의 제목인 '대학살의 신'은 태곳적부터 전적으로 군림해온 유일한 신이라고 설명된다. 인간의 삶에 폭력이 존재한 오래전부터 우위의 위용을 부려왔다는 신으로, 현재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이 신이 위력을 발휘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작품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폭력을 주도하는 인간의 야만성이 어디까지 바닥을 드러낼 것인가를 염려하는 세상에서 예절이 야만을 이길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 스페인 연극┃야스미나 레자 지음. 백선희 옮김. 뮤진트리 펴냄. 120쪽. 1만5천원


2004년에 나온 희곡 '스페인 연극'은 작가가 즐겨 다루는 주제인 가족 관계를 세밀하게 관찰한 작품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스페인의 젊은 작가가 쓴 극 '스페인 연극'을 리허설하고 있다. 작가는 이 연극을 축으로 극 중의 배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분리하고, 극 중 극인 '스페인 연극'의 현장으로 데려가고 또 그 극 중 극인 '불가리아 연극'으로 연결한다.

작품은 극 중 극에서 가족을 이루는 이들의 가차 없는 대화를 통해 위기에 처한 한 가족의 좌절과 절망을 포착한다. 그리고 연극과 현실을 오가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인 배우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특히 삶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대변하는 배우들의 시적인 독백이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긴 여운을 남긴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