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해결에 18년간 380조 투입
韓, 젊은 부부 초점 기존 정책 한계
할머니 가설, 출산·양육 문제 해결책
외국인 가사관리사 확대 방안보다는
조부모에 대한 다양한 지원 늘려야
그런데 서울시는 최저임금이 적용된 월 238만원의 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근로기준법과 ILO 협약에 따라 국적에 의한 임금 차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출산과 양육의 과제를 노동과 비용의 문제로 보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논쟁을 보면서 근원을 다시 생각해본다.
왜 여성은 45세 전후에 폐경을 맞이함에도 장수를 하는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제시된 것이 바로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다. 인류학자인 허디(Hrdy)는 인간 진화의 원동력이 협동적 양육에 있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으로 독립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엄마 혼자 감당할 수 없다. 아빠를 비롯하여 형제자매, 할머니 혹은 비혈연으로부터 자원을 지원받아야 한다. 협동적 양육이 출산과 인간 진화의 핵심이라는 것. 호크스(Hawkes)교수는 협동적 양육 중에서도 할머니의 역할에 주목했다. 루마나(Lummaa) 교수도 핀란드와 캐나다의 가족사를 조사해 할머니가 자손의 번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할머니가 오래 산 가족에서는 아들딸이 더 빨리 결혼했으며, 손자 손녀의 터울도 짧았다. 그리고 이들이 탈 없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비율도 높았다. 그는 할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아이들을 키우는 경험을 전달하고, 직접 손자들의 양육에도 도움을 줘 자식들이 아이를 갖는 데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마나 교수는 지난 7월 발표한 논문에서 사회경제적 지위와 출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핀란드의 150년간(1800~1949) 무자녀의 역사적 추세를 조사한 후 출산의 회복력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낮은 사회경제적 집단의 가족은 위기 시기에 가장 큰 타격을 입으며, 출산력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계층과 중간 계층은 출산율이 안정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무자녀 비율은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집단에서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가족 형성 및 재생산의 불평등을 예방하는 것이 저출산과 인구 회복력을 위한 핵심 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골딘(Goldin)교수는 한국이 저출산 관련 정책을 갖고 있지만 이를 실천하는 직장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의 핵심적 주장은 남성 우위 문화와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 그의 비판처럼 한국의 출산 정책은 백약이 무효이다. 그렇다면 거벤(Gurven) 교수의 주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그는 노인과 젊은 세대 사이의 자원 공유를 바탕으로 한 각각의 역할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다. 노인들은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기술력과 손주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그는 세대를 어떻게 다시 연결하고 노인의 지혜와 전문 지식을 활용할지 생각할 때라고 한다.
한국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8년간 380조를 투입했다. 젊은 부부에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정책으로는 저출산과 육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역할 제고와 세대 간 협동에 기초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가족 보호자가 간병사 자격을 갖추면 간병인을 할 수 있다. 간병비를 절감하면서도 가족 환자에게 세심한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
할머니 가설이 가족의 재구축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를 정책으로 응용·실천할 때다. 아파트와 주택의 구조를 조부모와 가족 세대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전면 수정해야 한다. 할머니 세대의 지혜와 경륜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로당과 유치원을 함께 설치·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필리핀 이모의 확대보다는 손주를 양육하는 조부모(외조부모)에 대한 금전적 지원, 세금 감면, 주택 지원 정책 등을 통해 저출산과 육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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