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의 전용차가 신호위반을 하다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기사는 뒷좌석에 수상이 타고 있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교통딱지를 발급했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 현장에 흡족했던 처칠은 경찰청장에게 그 경찰의 특진을 요청했다. 이번엔 청장이 '교통위반 딱지 발급은 승진 사유가 아니다'라며 거부했다. 처칠은 또 감동했다. 영국의 법치를 기리는 유명한 일화다.
아시아엔 필리핀의 국부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있다. 청백리 대통령은 직접 차를 몰 때가 많았던 모양인데, 교통위반으로 걸렸다. 신분 확인 절차에서 대통령임을 확인한 경찰을 거수경례를 올렸다. 예우는 거기까지였고, 경찰은 벌과금 통지서를 발부했다. 막사이사이는 흔쾌하게 통지서를 받아들고 자리를 떠났다. 막사이사이는 그 경찰에게서 필리핀의 밝은 미래를 봤을 테다.
영국 경찰은 2020년 관저에서 생일파티를 연 보리스 존슨 총리와 참석자들의 코로나19 방역 위반 행위를 확인해 벌금을 물렸다. 경찰뿐 아니다. 런던의 주차단속원은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차량에 주차위반 딱지를 붙였다. 필리핀 경찰의 비리와 부패는 심각하다. 교도소는 범죄자들의 해방구다. 처칠시대의 영국 경찰은 그대로지만, 대통령을 단속했던 필리핀 경찰은 막사이사이와 함께 사라졌다. 영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선진국이고, 필리핀은 아시아의 중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떨어졌다.
경찰이 국회에 제출한 과태료 체납 자료가 화제다. 교통법규 위반으로 물린 과태료 중 미납입액이 1조2천억원이 넘는데, 임모씨의 기록이 놀랍다. 속도위반 1만9천651건에 신호위반 등 1천236건으로 인한 미납 과태료가 16억원이 넘는다. 임모씨 비슷한 사람 100명의 미납 과태료가 315억원에 육박한다. 이런 자료를 버젓이 국회에 제출한 경찰이 더 놀랍다. 2만건이 넘어가는 임모씨의 교통법규 위반은 필리핀에서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임씨의 2만여건 교통법규 위반은 법치에 대한 테러다. 경찰은 제도와 인력을 탓한다. 일벌백계 의지를 상실한 공권력의 상투적인 변명이다.
2만건의 법규위반자를 방치하니 전 정권의 총리와 법무장관, 현 정권의 행안부장관과 공영방송 사장이 과태료 미납을 간단한 사과로 퉁치고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적 규범이라는 격언이 무색해졌다. 내로남불 지옥의 기원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