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열린 사회, 인류 나아갈 길"
이데올로기 조작으로 발휘되는 '선동'
과학적인 검토 없이 이루어지는 실수
신자에게 '믿음' 강조하는 교권주의자
순종 강요하는 편향적 사상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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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45)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린 사회'에 대한 자신의 깊은 고민을 담고 있는 대표 저서이다. 이 저서에서 포퍼는 과학적 탐구와 민주적 사회에 대해서 항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 이론이 반드시 절대적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에 과학에서도 실험과 관찰을 통해 틀릴 가능성을 찾아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퍼는 인류의 역사가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 간의 투쟁 역사'라고 규정하면서 그가 경험한 나치즘과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통제된 사회에서 인간이 나아갈 길은 오직 '열린 사회'로 향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열린 사회(Open Society)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존중되고, 비판과 수정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열린 사회는 권위와 독단을 거부하고, 민주적 참여를 통해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가 경험한 당시의 독일은 나치와 독일 기독교 권력 세력이 상호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국민들에게 '아리안 순혈주의'와 '새로운 기독교 의식'을 가질 것을 선동했다. 이들은 '유대교에 의해 오염된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독일 사회를 닫힌 사회로 몰아넣었다. 이 선동의 결과, 세뇌된 독일의 기독교인들은 1938년 11월 유대인 상점 7천500개를 약탈하고 1천400개 이상의 유대인 회당을 파괴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1941년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인류 최대의 잔혹한 홀로코스트 시발점이 되었다.

군중의 선동이 항상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일으켜지는 점은 역사의 교훈이다. 선동은 객관적, 과학적 근거가 아닌 이데올로기 조작을 통해 발휘된다. 관동 대지진 당시 피폐해진 일본인들에게 재일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로 국민의 불만을 재일 조선인 학살로 돌린 사건이나, 최근 북한이 내부 경제적 어려움을 남한의 북침 혹은 무인기 침투 위협으로 고조시키는 것 또한 내부 권력자들의 목적을 위해 선동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들은 모두 '열린 사회'가 경계하는 '선동'이라는 장애물이다.

최근 광화문에서 열린 일부 기독교 개신교의 대규모 집회에 동성애 법제화와 차별금지법 통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이러한 법안이 '기독교적 가치(성경의 말씀)를 위협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이들이 '양성평등', '성 소수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갑작스럽게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이유이다. 혹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신교 신자의 감소 위기를 극복하고자 교권주의자들이 새로운 '확증 편향 이데올로기'를 통해 교권주의자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표출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포퍼는 종교적 신념이 종교 권력자의 주장과 일치하는 순간, 이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토가 없이 이루어지는 실수라고 지적한다. '열린 사회'의 적은 기득권 계층이며 개신교 교권주의자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이 신자(信者)에게 강조하는 '믿음을 통한 구원'은 자신들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잘못 작동되면 비이성적, 비합리적 선동으로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믿음의 확장을 위해 역사 속에서 교권주의자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알아야 하며, 또 얼마나 그들이 반성했는지도 균형감 있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첫 번째로 행하신 '성전 정화(淨化)' 사건은 당시 교권주의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얼마나 중요하기에 마태(21:12~13)·마가(11:15~17)·누가(19:45~46)·요한복음(2:13~16)의 저자들은 모두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권주의자에게 '동성애 반대'보다 더 급한 것은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처럼 종교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반성과 성찰이 아닐까.

상호 존중 속에 대화하며 공존을 모색하는 진정한 열린 사회를 다시 꿈꾸는 것은 교권주의자들의 근거인 성서가 '이 땅에 진정한 하늘나라의 도래(到來)'를 말하기 때문이다.

/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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