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의 체통은 중대하나 내일은 주상과 더불어 노상왕을 모시고 동쪽 교외 광진(廣津)에 가고자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태종이 아들인 주상 세종의 건강을 걱정해 거둥(擧動·임금의 나들이) 할 뜻을 밝힌 기록이 남아있다. 세종은 당뇨 증상인 소갈증(消渴症)과 비만에 시달렸다. 육류 위주의 수라를 즐기고 책상 앞에서 독서와 연구에 몰두한 탓이다. 물을 많이 마셔도 소변이 적게 나오는 것이 소갈인데, 당시 양반들이 많이 앓았다. 과거 왕이나 고위 관료들이 즐겼던 고지방·고열량 식습관을 현대인이 누리다 보니 당뇨병은 한때 '부자병'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당뇨병은 체내 혈당이 높아서 소변으로 포도당이 넘쳐 나오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당뇨병'이라 불리는 '2형 당뇨'는 식단 불균형이나 스트레스·운동 부족 등과 연관돼 있다. 하지만 1형 당뇨는 완전히 다르다. 체내 인슐린을 생성하는 세포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파괴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11월 14일 '세계 당뇨병의 날'을 앞두고 대한당뇨병학회가 '당뇨병 팩트시트 2024'를 공개했다. 국내 19~39세 청년 인구의 2.2%인 30만8천명을 당뇨병 환자로 추산했다. 30대 환자는 22만8천명, 20대 8만명의 2.85배나 된다. 심각한 것은 20~30대 청년의 당뇨병 전단계 유병률은 21.8%, 약 303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는 비율은 43.3%에 그친다.

일반적 당뇨는 중장년층의 질환으로 인식해 20~30대는 설마 하고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20대 후반부터 당뇨로 고생한 세종의 할아버지 태조 이성계도 당뇨였다. 가족력이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가족력은 곧 식탁의 대물림이기도 하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이용해 6만명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태아기부터 생후 1천일까지 당분 섭취를 줄이면 당뇨병 발병이 4년 늦춰진다는 것이다.

요즘은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고과당 음식이나 가공식품이 몸을 망가뜨린다. 또 지나친 음주와 불규칙한 식습관은 '젊은 당뇨'를 부추긴다. 의관 전순의가 쓴 한국 최고(最古) 식이요법서 식료찬요(食療纂要)를 보면, 좁쌀·율무·보리가 당뇨 증상을 누그러뜨린다고 안내한다. 당뇨는 완치가 없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괴로운 질병이다. 젊을 때부터 몸을 살피고 다스리는 식치(食治)의 지혜가 필요하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