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인천항 갑문 공사에서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인천항만공사(IPA) 법인과 최준욱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안전보건관리 총괄책임자로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결론 낸 ‘엇갈린 판결’
2020년 6월3일 인천항 갑문 정기보수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기계공 A(당시 46세)씨가 18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재해조사서를 보면 A씨는 당시 정비용 자재인 H빔을 내리던 중 사고를 당했다. 무게가 42kg에 달하는 장비를 옮기는 작업이었는데도 현장에는 안전난간 등 안전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이후 검찰은 인천항만공사 사장실 등을 압수수색해 재난·안전관리 관련 서류 등을 확보한 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인천항만공사와 최 전 사장을 기소했다.
공사와 최 전 사장은 법정에서 “갑문 공사를 발주하긴 했으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할 책임이 없었다”며 “시공을 주도하거나 공사를 총괄하지 않는 ‘건설공사 발주자’에 해당할 뿐”이라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도급인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을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 제공 등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로 규정하면서도 건설공사 발주자는 도급인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를 두고 1심 재판부는 “갑문 유지·보수는 인천항만공사의 기본적인 업무”라며 “인천항만공사는 인력이나 재정 등에 있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한 하도급업체에 위험을 외주화했다”며 최 전 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인천항만공사 법인은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건설공사의 시공을 총괄하지 않는 발주자에 해당한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엇갈린 판결을 두고 대법원이 지난 14일 “원심(항소심)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발주자’ 자처하던 사업주 의무 커질 듯
대법원 재판부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한정적으로만 인정하고, 의무 위반도 제한적으로 형사처벌하던 기존 법령에 비해 의무 인정 범위를 확대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갑문 유지·관리를 주된 사업 목적으로 하는 피고인과 인천항만공사는 항만 핵심시설인 갑문의 유지 보수에 관한 전담부서를 두고 있다”며 “공사의 사업장에서 진행된 갑문 정기보수공사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어 “(공사는) 갑문 정기보수공사에 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닌 도급 사업주로서 수급인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산업현장 안전조치 강화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결은 그동안 ‘발주자’ 지위에 있다며 수많은 책임과 의무를 회피했던 원청사들의 무책임한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꿀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인태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 변호사는 “그동안 법원별로 도급인과 발주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달라 판결도 제각각이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법원은 안전조치 책임이 없었던 발주자를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앞으로 산업안전보건법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재판에서도 이번 판결을 참고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지차제장이나 공기업 사장 등이 관련 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너무 적다. 수사당국이 의지가 커져야 이번 판결에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