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정치 맡기는 행위 퇴행에 불과

법관 판단이 결정력 행사하는 사회

윤리적 문제 사법화하는 위험 증대

정당성 위해 보편적 가치 부응해야

법조개혁 없는 민주주의 불가능해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극명하게 분열되었다. 한쪽에서는 ‘사법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환호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정치판결’이며 심지어 ‘사법살인’이라고 주장한다. 판결의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5년 이상 야당대표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는 선고는 분명 정치적인 판결임에는 틀림이 없다. 뿐만 아니라 몇 년을 두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법적 위협을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힘들 것이다. 문제는 정치와 법치의 대립과 갈등에 있다.

정치는 한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의 삶을 총체적으로 조율하는 체제이다. 정치현실은 단순히 지배 권력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와 사회적 측면은 물론, 심지어 한 개인의 실존적 영역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에 비해 법은 그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규범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하위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법이 정치를 넘어 작동한다면, 이는 명백히 뒤집어진 현상이다. 정치적 층위의 문제를 최소한의 규율로 작동하는 법에 맡기는 것은 정치적 퇴행에 불과하다.

법이 최상의 통치수단으로 자리 잡은 곳에 공동체를 위한 정당한 정치는 설 곳을 찾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법이 과도하게 작동함으로써 정치적으로나 윤리적 문제를 사법화하는 위험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 법조차도 특정 세력이 독점한다면 이 위기는 커질 수밖에 없다. 법조항은 모든 사안을 규정할 수 없기에 이를 적용하는 법관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법 불신이 증대하는 현상은 법 현실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몇몇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 민주사회의 삶에 과도하게 결정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정상 사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정당한 법적 판단을 위해서는 이를 수행하는 법조인이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규범과 가치체계에 부응해야 한다. 법조인이 이런 체제에 부응하도록 교육하고 감시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 두 명의 자의적 판단이 그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가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는가. 때 맞추어 출간된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나치즘의 등장을 ‘합법적 혁명’으로 미화한 역사를 분석한다. 일견 이 현상은 정치를 통해 법을 장악한 나치즘이 그 법의 이름으로 야만의 폭정을 수행한 듯하다.

그러나 나치즘의 야만과 집단 살인은 철저히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법이 잘못된 ‘정치 이데올로기에 굴복’함으로써 ‘국가권력이 일반적인 도덕과 법 기준을 전부 위반해도 이를 막는 데 실패’하는 역설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마침내 법이 ‘민주주의 규범의 전복과 제도 파괴’에 앞장서는 결과를 낳았다. 법치는 상위의 규범인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종속되어야 한다. 법치가 정치를 휘두른다면, 그 법의 일면적 판단에 따라 민주주의 사회는 언제라도 위기에 처해질 수 있다.

이 사회의 법치는 어떤 경우라도 민주주의 정치에 우선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법이 정당하고 공정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도대체 지난 시기 군사 독재시대에서나 보았던 시국성명과 시민 집회가 확산되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내용조차도 이미 철 지난 듯이 보였던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 법치주의를 빙자한 정치의 사법화, 몰락하는 경제와 불평등의 확산, 대통령 부부의 권력사유화, 야만적 식민주의로 퇴행하는 역사, 불공정과 특권 계층의 사적 카르텔 확산, 갑자기 눈앞에 닥친 전쟁위기 등으로 채워져 있다. 선출하지 않았던 대통령 아내가 주무르는 국정, 주가조작, 명품 수수 사건에 대한 검찰의 폭주, 검찰권력 사적 이용, 채 상병 사망사건, 함량 미달의 고위 관료들, 이태원 참사, 공천개입 등 끝없이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뒷받침하는 법률가를 ‘히틀러의 법률가’에 비견하는 것이 무리한가? 그들은 공정성이 무엇인지 전혀 알려 하지 않는다. 불의한 법치를 민주주의 정치 규범에 종속시키는 일은 시급한 현안이 되었다. 정치와 국회는 스스로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법에 굴종시켰다. 모멸감이 시민의 몫이 된 시대, 그 참담한 결과를 왜 민주시민이 겪어야 하는가? 법조개혁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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