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빚고 계절이 담가… 무르익는 우리 전통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앞서

‘장 담그기’ 역사성·전통성 되짚은 전시

고구려 항아리·고려 죽찰 등 유물·기록

조정숙 명인 ‘씨간장 장석’ 하이라이트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의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의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우리의 장(醬)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것이 확실시됐다. 콩을 발효해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 먹는 우리 장 문화에 대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 정부 간 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밥, 김치와 함께 한국 음식 문화의 핵심”이라고 말하며 “집마다 다르고 각 가족의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장 담그기는 오래전부터 폭넓게 전승된 전통 음식문화 중 하나이다. 이는 장이라는 음식뿐 아니라 재료를 준비해 장을 만들고 기다리는 과정까지 모두 아우르는데, 결국 이 모든 것이 한국 음식의 맛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장이 지닌 역사성과 전통성을 되짚고, 우리 발효 음식을 과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된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은 장 담그기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이 시점에 더 와닿는 전시다.

장의 과거를 보는 전시 첫 섹션에는 콩 재배와 장과 관련된 기록, 유물을 소개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서 ‘제민요술’에는 황고려두와 흑고려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고구려 때 콩을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인들이 장이나 술 등을 보관했던 항아리로 추정되는 ‘고구려 항아리’, 장이 전국에 배송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죽찰’ 등도 전시돼 있다.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의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의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한쪽에서는 바람과 공기와 물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사각의 메주 틀을 스피커로 만들어 장이 익어가는 모습을 소리로 담아낸 샘표의 소장품 ‘Ferment(발효되다)’는 자연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우리의 장을 떠올리게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를 보면 장을 따로 보관하는 ‘장고’를 볼 수 있다. 장고를 관리하는 상궁을 ‘장꼬마마’라고 했는데, 장맛이 변하면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긴다는 믿음 때문에 조선 왕실에서는 장을 유독 엄격하게 관리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담긴 ‘경국대전’과 ‘낙선재 주변’ 자료 등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또 장 담그기 좋은 날을 기록하고 있는 ‘규합총서’, 순창고추장을 예찬한 ‘해동죽지’와 더불어 옹기 속에서 미생물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탄생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담은 미디어 아트 ‘옹기 속 생명 이야기’도 전시장을 채운다.

숨 쉬는 그릇으로 인식된 옹기는 장을 담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별 특성에 맞게 다르게 생긴 옹기는 그곳에 새겨진 문양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시된 옹기 뒤로 큰 스크린에 싹이 움트는 봄부터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까지 사계가 펼쳐지며 전시 한 가운데서 힐링의 시간을 선사한다.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의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국립농업박물관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의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지는 조정숙 명인의 ‘씨간장 장석’은 실제 조 명인에게 빌린 것이다. 여기서 장석은 간장이 증발하면서 소금 결정이 보석처럼 생기는 것을 말한다.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면 진하고 깊은 색의 씨간장이 고여있고, 주변으로 오밀조밀 만들어져 있는 결정들을 볼 수 있다. 장석은 일반소금보다 나트륨이 적어 덜 짜고 감칠맛이 좋은 천연 조미료로 유산균, 철분, 칼슘, 미네랄 등이 포함된 건강한 소금이라 불린다. 세월의 더께와 함께 장독 안에서 무르익어간 재료들이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기다림의 맛, 시_간’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