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 걸리면 도망갈 수 밖에…”
수원서 40대 미화원, 코뼈 부러져
8월 서울서 노숙인 흉기에 사망도
잇단 사고에도 ‘안전장비’ 태부족

“시비가 걸리면 일단 도망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어요.”
지난 15일 오전 용인에서 만난 40대 환경미화원 A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번화가 구역을 담당하는 그에게 가장 고역인 건 이른 새벽 근무도, 냄새나는 쓰레기 처리도 아니다. 밤이면 술에 잔뜩 취해 시비를 걸어오는 주취자들이 가장 힘든 문제다.
보통 주취자들이 다가오면 최대한 접촉을 피하고 있지만, 본인에게 아무 이유 없이 욕을 할 땐 부아가 치민다고 한다. A씨는 “시비가 걸려도 못 들은 척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서울에서 새벽 시간 작업 중인 60대 여성 환경미화원이 노숙인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사고 발생 이후, 경기도 내 환경미화원 안전 관리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8월7일자 9면 보도)이 나왔지만, 이들의 근무 환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수원에서만 올해 세 차례 환경미화원을 상대로 한 폭행 사건이 발생, 환경미화원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6시께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담당 40대 환경미화원 B씨가 시청 앞 도로에서 미화 작업 도중 한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B씨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지만, 대뜸 날아온 주취자의 주먹을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협을 느낀 B씨는 시청 안으로 대피하기 위해 도망쳤으나, 해당 주취자는 B씨를 계속 따라오며 폭행을 이어갔다. 행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올 때까지 B씨는 머리와 턱, 얼굴 등을 무차별적으로 구타당했다.
환경미화원을 향한 폭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8월 장안구 영화동의 한 공원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60대 환경미화원이 주취자에게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고, 앞서 3월에도 팔달구 지동의 한 거리에서 50대 환경미화원이 생활쓰레기 분리 배출을 미흡하게 한 시민을 계도하다 결국 폭행을 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도내 일부 지자체에선 여성 환경미화원에게 경보음과 자동 신고 기능이 탑재된 ‘안심벨’을 지급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현장에선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최호진 수원시 환경미화원노조 위원장은 “이번 폭행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질 때 환경미화원이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호신용품 지급이 필요하다”며 “우범지대에 근무하는 인력을 2인1조로 하자는 건의를 지속해서 했음에도 예산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