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사의 거장 박경리 선생

타계 전 詩로써 실존적 제의 증명

한강 존재 알린 10여년전 펴낸 詩

역사와 시적 산문 조화롭게 결속

시인이라는 원적, 문학 끌어갈 것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박경리 선생은 ‘토지’ 등의 빛나는 소설을 통해 근대사의 불우한 난경(難境)들을 재현하고 치유해온 한국 소설사의 거장이다. 그러니 ‘시인 박경리’라는 표현은 조금 생소하다. 그러나 선생은 첫 시집 ‘못 떠나는 배’(1988)로부터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2008)까지 모두 다섯권 시집을 출간한 엄연한 ‘시인’이다. 선생의 첫 시는 1954년 상업은행 행우회 사보 ‘천일’ 9호에 ‘박금이’라는 본명으로 발표한 ‘바다와 하늘’이다. 소설가로서의 삶에 맑은 샘물과도 같았을 선생의 이러한 시쓰기는 타계 직전 현대문학 2008년 4월호에 발표된 ‘까치설’ 등 세 편을 통해 선생에게 매우 중요한 실존적 제의(祭義)였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결국 박경리 문학의 처음과 마지막은 모두 시(詩)였던 셈이다. 선생은 소설을 자신의 주 장르로 채택했지만 존재론적 원형으로서 시를 쓰면서 시집을 펴냈다. ‘시인 박경리’가 ‘소설가 박경리’와 병행하였고 호혜적으로 결속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선생의 자화상처럼 읽히는 시편들이 있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긴 낮 긴 밤을/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글을 썼던 사람/육체를 거세당하고/인생을 거세당하고/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사마천) 사랑의 기억도 없이 긴 낮 긴 밤을 앓았을 사마천과 남편과 아들을 잃고 집필에 매달린 박경리는 어느새 은유적 동일성을 띤다. 역사적, 인간적 진실을 기록해가는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글을 썼던 사람’이야말로 사마천과 박경리 두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붓 끝에/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그게 참여다//붓 끝에/청풍을 부르는 소리 있어야/그게 참여다//사랑이 있어야/눈물이 있어야/생명/다독거리는 손길이 있어야/그래야 그게 참여다’.(문필가) 이 작품은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을 내장하고 ‘청풍을 부르는 소리’를 갖추어야 글쓰기로서의 진정한 참여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과 ‘눈물’이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생명’을 다독거리는 손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생명을 향한 사랑과 눈물과 손길의 참여야말로 모든 존재자들을 품어 안는 모성의 발로요 가장 근원적인 연민의 마음일 것이다. 이처럼 선생에게 소설은 거대한 산맥이었고 시는 그 산맥 사이로 물을 흐르게 하고 사람을 살게 하고 무궁한 생명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해준 골짜기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을 생각하면서 박경리 선생이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한강이 시에서 소설로 전향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강은 시에서 소설로 존재 전환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시인 한강’이 ‘소설가 한강’으로 들어가 존재론적 원형으로서 굳건하게 그의 소설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단 순서로 보아도 1993년 ‘시인 한강’이 1994년 ‘소설가 한강’보다 먼저였고 10여 년 전 펴낸 유일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가 일찌감치 베스트셀러에 올라 시인으로서의 그의 존재를 확연하게 알려준 것만으로도 그는 언제나 시인이었다.

스웨덴학술원은 한강 소설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역사’와 ‘시적 산문’은 조화롭게 결속하기 힘들고 심지어 서로 충돌하기까지 하는 기율이다. 하지만 한강의 소설은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시’의 마음과 문장으로 우리 현대사 경험을 유니크하게 초대한다. 이때 물샐 틈 없이 촘촘하고 완벽하게 구축된 한강만의 감염력 높은 특유의 문장들이 태어나고 감동적으로 번져간다. 그 마음과 문장의 발화자는 분명 ‘시인 한강’임에 틀림없다. 그가 맞서고 드러낸 트라우마와 생의 연약함이야말로 이러한 ‘시인 한강’의 마음과 문장의 힘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박경리 선생이 그러하였듯, 시인이라는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원적(原籍)이 한강의 문학을 끌어왔고 또 끌어갈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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