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 등 ‘글로벌 노스’ 반이민 목소리
일손 도움없인 장기침체·고물가 극복 불가
코로나 이후 육체·가사노동 대부분 외국인 몫
이주민과의 공생, 비교우위 위한 중요 관건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7일 대선 승리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최우선 국정과제로 미국의 국경 강화와 이민자 대량 추방을 꼽았다. ‘이민자의 천국’ 캐나다에서는 일자리 감소를 내세우며 “제발 그만 오세요” 타령 중이다. 유럽과 미국 등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에서 반(反)이민 목소리가 더 커질 예정이다.
서구에서 이주 노동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절은 끝난 듯하다. 1970∼80년대에 미국 러스트 벨트의 여러 주와 영국 미들랜드, 북·서유럽 공업지대에서도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했다. 이민 반대론자들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에서 대거 몰려드는 저임금의 이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앗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이민 연구의 권위자인 헤인 데 하스 암스테르담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이민이 글로벌 노스의 실업률을 높인다는 주장이 허구라고 밝혔다. 국제이주는 세계 인구의 3% 정도로 과거보다 낮을뿐 아니라 불법 이민과 난민은 0.3%로 극히 미미했다.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보수정치인들의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토박이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소위 3D업종의 저임금 노동수요가 상당하다. 이탈리아는 농촌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이 매우 심각하다. 해외 일손의 도움 없이는 장기침체와 고물가 극복이 불가능한 탓에 글로벌 노스의 이민반대론이 언제까지 먹혀들지 의문이다. 동북아 신흥공업국들의 본격적인 외국인 노동자 흡수까지 가세할 경우 조만간 글로벌 해외인력 유치경쟁까지 점쳐진다.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제조업 선진국들의 외국인 노동자 모시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세계 최저인데 주변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는 2023년 0.78로 한국과 비슷하고 대만도 2022년 0.87명으로 합계출산율 0명대 국가에 합류했다. 2022년 합계출산율 1명을 기록한 중국도 0명대 합류가 임박했다. 오랫동안 고령화와 저출산을 겪어온 일본이 1.26명으로 오히려 양호하다. 일본은 그동안 산업연수생제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해 왔으나 낮은 임금과 이직 제한 등으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커지자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노동자의 대거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작년 기준 일본에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는 200만여 명인데 일본 정부가 목표하는 연평균 1.24% 성장을 유지하려면 2040년까지 외국인 노동자수가 674만명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 역시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대만의 외국인 노동자수는 2023년 기준 73만4천명인데 앞으로 40만명 이상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부터 외국인 노동자 채용 한도를 확대하고 영주권 제공을 미끼로 장기 근무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에 근로·유학 등의 이유로 3개월 넘게 거주 중인 외국인 주민수는 2023년 11월 기준 246만명으로 역대 최다이다. 정부는 2020년 5만6천명이던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E9 비자) 유치 상한을 금년에 16만5천명으로 3배 이상 늘렸는데 한국은 일본, 대만과의 경쟁에서 일단 승기를 잡았다. 아시아권의 노동자들은 동북아의 인력수입 국가들 중에서 한국을 가장 선호하는데 압도적으로 높은 임금 때문이다. 한국은 E9의 임금이 월평균 242만원이나 일본은 189만원(비숙련)∼220만원(숙련)이다. 대만의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127만원으로 가장 낮아 외국인 인력 확보에 고전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해온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육체노동과 가사노동 대부분이 이주민들의 몫으로 굳어졌다. 글로벌 노스의 민간 용역업체들은 정부의 묵인하에 양질의 외국인 노동자 스카우트에 열중이다. 한국의 총인구 대비 외국인 주민 비율은 4.8%로 역대 최고인데 내년에는 5%를 넘을 예정이다. 학계에서는 외국인 주민비가 5%를 넘으면 다문화사회에 진입했다고 간주한다. 이주민과의 공생(共生)이 비교우위를 위한 관건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