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튜드 적용한 프랑스·일본·인천 사례

 

도쿄 ‘코호엔 니시오이’ 요양시설

환자-요양보호사 대화 목적 ‘존중’

카드놀이·음악감상도 스스로 결정

 

서구 제1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은

매일 아침 ‘서기’부터 다시 가르쳐

독립 존재로 의지 실현 ‘첫째 목표’

■ 일본, 소통으로 얻는 자유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 요양시설 ‘코호엔 니시오이’(Kohoen Nishi-Oi)는 기상·식사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 환자 증세에 따라 달리 판단하지만, 기본적으로 입소자가 원하지 않으면 세면·목욕을 강요하지 않고, 답답해 하면 산책을 다녀올 수 있게 한다. 경인일보가 지난달 찾은 코호엔 니시오이는 통제가 아닌 환자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치매 환자와 요양보호사 간 대화는 환자를 존중하기 위한 목적이자 수단이었다. 시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병원 외래 진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돌봄 제공자는 “동행이 필요하지 않으신가요”라고 묻는다. 최대한 환자의 자율성을 지원하는 게 코호엔 니시오이 수칙이다.

이곳에서 ‘어떤 행사를 열면 좋겠는지’ ‘건강검진을 위해 저녁 시간대 거주 공간을 방문해도 되는지’ ‘목욕은 무슨 요일에 했으면 좋겠는지’ ‘식사는 정해진 식단이 좋은지 아니면 가족이 사다 준 간편 조리식이 먹고 싶은지’ 등 모든 돌봄 서비스는 환자 의향과 기호로 결정한다.

인지증을 앓고 있는 이시카와 묘세(사진)씨가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케어홈 니시오오이 코우호우엔 요양원’에서 경인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0.21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인지증을 앓고 있는 이시카와 묘세(사진)씨가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케어홈 니시오오이 코우호우엔 요양원’에서 경인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0.21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80대 치매환자 이시카와 묘세(Ishikawa Myose)는 2주간 자신을 간호했던 도쿄의과대학 실습생이 보낸 편지를 꺼내 보이면서 “함께 트럼프 카드를 하고 만돌린을 연주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 피아노를 치거나 음악을 듣는 것까지 (간병인과) 얘기해서 결정한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침대 머리맡에 둔 남성의 사진이 남편이냐는 질문에 “그랬던가”라며 잠시 머뭇거렸지만, 다른 이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때는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코호엔 니시오이는 치매 환자를 ‘질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소통하기’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내걸면서 돌봄을 받는 환자의 기분을 고민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코호엔 니시오이 시설장 타나카 토모에(Tanaka Tomoe·78)가 돌봤던 환자의 경우 식사를 거부했는데, 구강 상태가 좋지 않아 간병인이 임의로 음식을 잘게 으깨서 줬던 게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 소통 없는 일방적 배려에 상대는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돌봄 중 다른 환자가 급한 요청을 하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통보’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여기 환자를 먼저 도와주고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상황을 ‘설명’하게 됐다”며 “환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으로 불만을 나타내는 성향이 줄었고, 직원들 업무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 한국(인천), 독립된 존재로 걷기

“오늘은 복도 끝까지 걸어가 볼까요?”

인천 서구에 있는 제1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에 입소한 치매 환자들은 매일 아침 병동 복도에서 ‘서는 법’을 배운다. 의료진이 환자 양쪽 겨드랑이를 잡고 지탱하자 휠체어에 앉아 있던 환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환자는 불안한 표정으로 복도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지만, 이내 자신감을 얻은 듯 좀 더 빠른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환자는 벽에 설치된 난간을 짚으며 걷는 데 집중했다. 환자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자 간호사 2명이 다가와 팔꿈치와 손을 감싸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환자는 자신이 머무는 병상에서 열 걸음 떨어진 화장실까지 걷는 것을 목표로 하다가 병실 문밖으로, 병동 복도로 매주 목적지를 달리하며 걸음 수를 늘려간다고 했다.

스스로 서고 걷게 하면서 환자 신체 기능을 유지·회복하는 것이 병원의 첫째 목표다. 휴머니튜드는 걷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독립된 존재로서 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에서 2년째 치료를 받는 김시영(90)씨는 “여기서는 매일 걷도록 유도한다”며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서) 언제든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쉬고 싶을 땐 의자에 앉아 잡지를 읽는다”고 했다.

김진옥(65) 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 간호원장은 “환자를 눕혀 두지 않고 최대한 걷고 움직이도록 다양한 활동을 마련하고자 했다”며 “신체 기능이 향상되면서 환자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의료진에게 반응을 보이고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