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속 환상·스산한 스릴러처럼… 라벨·버르토크의 티키타카 매력
프랑스 인상주의·헝가리 민족주의
색채 다른 두 작곡가 곡들의 향연
강렬한 명암 대비 돋보이는 선곡
‘이상한 중국의 관리 모음곡’ 압권

묘한 조합이었다. 한 공간에서 만난 라벨과 버르토크의 음악. 이를테면 파스텔 빛 풍경 ‘요정의 정원’과 암청색 어둠이 그려지는 ‘이상한 중국의 관리 모음곡’이 연달아 연주되는 식이었다. 지휘는 올곧았다. 정확한 박자와 강단 있는 끝맺음. 정직한 앙상블의 향연을 보여줬다.
독일 지휘자 크리스토프 알트슈테트(사진)의 첫 내한 공연이 펼쳐진 지난 21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이날 수원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 헝가리 민족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지는 작곡가 버르토크의 곡을 번갈아가며 감상할 수 있는 자리였다.
1부에서는 두 작곡가의 차이점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곡들로 포문을 열었다. 라벨의 곡으로는 환상을 재현한 듯한 풍경을 묘사했다면, 버르토크의 곡으로는 스산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표현해냈다.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은 평화로운 숲속을 묘사하듯 온화하고 섬세한 선율로 공간을 물들였다. 이중 4번째 파트 ‘미녀와 야수의 대화’에서는 각각 미녀와 야수를 대변하는 클라리넷과 콘트라바순이 대응하며 동화의 모습을 그려냈다.
압권은 이어진 버르토크의 ‘이상한 중국의 관리 모음곡’이었다. 곡에 담긴 폭력적인 긴장감을 트롬본의 굵은 선율로 담담히 풀어냈다. 크리스토프 알트슈테트의 해석은 동명의 원작 단편 소설, 멜시오르 렝겔의 글에 담겼던 그로테스크함을 충실하게 살려냈다.
해당 소설은 도시를 배경으로 세 명의 부랑자와 젊은 여성이 어느 중국인을 살해한 뒤 돈을 갈취하려는 상황, 그리고 결코 죽지 않는 중국인과의 대결을 그렸다. 여성이 이 중국인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그제야 그는 피를 흘리며 죽는다는 다소 실험적인 줄거리다.
2부에서는 두 작곡가의 대표적인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곡들이 울려 퍼졌다. 헝가리 민속 음악을 수집했던 버르토크의 ‘춤 모음곡’에서는 특유의 웅장함 넘치는 리듬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마지막 곡인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제2번’은 플루트의 기교가 돋보인 무대였다. 수원시향 플루트의 청아한 소리는 클로에를 눈앞에 생생히 그리는 듯했다.
더욱이 묵직한 현악기 소리가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면서 완벽한 앙상블을 이뤘다. 그리스 신화 다프니스와 클로에 이야기를 토대로 “방대한 음악적 프레스코화를 그리듯 작곡했다”던 라벨의 의도를 짐작게 했다.
강렬한 명암 대비가 돋보이는 선곡이었지만, 이날 관객들에게 두 작곡가의 조합은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공연 이틀 전 진행된 ‘클래식 아카데미’ 덕분이었다. 신은혜 부지휘자의 재치있으면서도 전문적인 설명과 크리스토프 알트슈테트의 곡 해석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정기연주회의 백미였던 ‘이상한 중국의 관리 모음곡’은 크리스토프 알트슈테트만의 해설이 곁들여져 청취에 묘미를 더했다.

크리스토프 알트슈테트는 “이 곡의 주제는 사랑이다. 섬뜩하면서도 마침내 평온함을 찾는 대비되는 요소들이 있는 곡”이라며 “이 때문에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진실된 감정이 표면적으로 더욱 잘 올라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시향의 다음 정기 연주회는 오는 12월 12일 찾아온다. 공연에 앞서 진행되는 클래식 아카데미에서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을 주제로 신은혜 수원시향 부지휘자의 풍부한 설명이 곁들여질 예정이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