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층 살림살이 쟁점 띄운 트럼프
제1현안으로 약자문제 다루는 역량
어느 정치집단에서나 필요한 덕목
경제적 약자 목소리는 크게 키우고
사회 소수자 혐오는 굳건히 맞서야
트럼프의 강력한 장점은 블루칼라, 비대졸자, 저임금 노동자와 같은 소외집단에게 기대를 품게 하고 이들의 삶을 핵심 의제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작업복 차림의 블루칼라 남성은 트럼프 유세장에서 그의 뒤쪽에 위치하며 화면에 가장 잘 띄도록 배치되었고, 이들은 종종 트럼프의 대표적 반대층인 젊은 여성과 나란히 자리했다.
한편 복지 취약계층이나 미국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해온 저임금 불법체류자들은 트럼프 진영에게 멸시와 배척의 대상이다. 인종차별도 여전하고 여성혐오도 거세다. 지지층의 불만을 대변하는 걸 넘어 차별과 혐오까지 대변하는 트럼프식 선동은 몰아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회적 목소리가 미약한 노동약자의 문제를 제1현안으로 대두시키는 역량은 어느 나라, 어느 정치집단에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많은 학자들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판하듯 그의 공약은 경제적으로도 유해한 것 투성이다. 일시적으로 이득을 볼지언정 결국 타국은 물론 미국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그는 ‘나만이 바꾸고 고칠 수 있다’는 이미지를 획득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후보자의 자질로 1위에 리더십(30%), 2위에 변화 견인(28%)이 꼽힌 가운데 트럼프는 각 응답자로부터 66%와 74%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의 막무가내 언행은 다수 유권자에게 ‘너무 지나치다’는 인식을 갖게 했지만 승패의 변수는 아니었다. 트럼프가 극단적인 후보라고 답한 유권자 54% 중 12%가 트럼프를 찍은 반면, 해리스를 극단적이라고 본 47% 중 5%만이 해리스를 뽑았다. 막말 퍼레이드에도 트럼프가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이다. 트럼프의 결함을 인지하는 동시에 그의 추진력이 더 낫다고 여긴 비판적 지지층은 이렇게 트럼프 승리의 막판 퍼즐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트럼프의 최대 장점은 하위층의 살림살이를 핵심 쟁점으로 띄우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 덕분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는 인플레이션 반사 이득에 기댄 고점의 여론일 여지도 적지 않다. 예컨대 가장 크게 표심이 변한 라틴계의 경우 이민정책의 적임자로 트럼프 47%, 해리스 50%를 꼽으며 팽팽한 양상이지만 트럼프가 강조하는 불법이민자 추방에는 28%만 찬성하고 무려 68%가 합법 전환의 기회 제공에 찬성한다. 트럼프 정부의 폭주가 쌓이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선거 결과가 무엇이든 한국 사회는 두 가지 교훈을 곱씹어야 한다. 하나는 트럼프의 약점인 혐오정치로, 한국에서도 비등한 이 비문명에 맞서기 위해 더욱 세고 더욱 정교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의 강점인 계급정치로, 저임금 육체노동자를 비롯한 여러 경제적 약자가 사회와 정치의 최대 현안으로 격상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쇠퇴한 산업과 지역이 있고 하루 벌어 하루 살기 급급한 노동자가 차고넘치며 청년세대 비대졸자가 30%에 달할뿐 아니라 졸업장이 무용지물인 대졸자도 쌔고 쌨다. 괴이하게 많은 산재 사망은 일상이 된 지 오래이고 자영업이 힘들다는 이야기 또한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 밀린 숙제가 국가와 정치의 명운을 건 현안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하위층에 인기를 끄는 극우세력이 나타나 밑바닥 문제를 급선무로 만드는 ‘불상사’라도 벌어져야 할 판이다. 최소한 미국에선 노동계급이야말로 정치의 중심이라는 지적에 힘이라도 실리고 있다.
15년 뒤 우리 사회가 나아질지 물었을 때 전체 국민은 56.8%가 그렇다고 답하지만 20·30대는 40.6%만이 나아지리라 내다본다. 다음 세대의 삶이 나보다 나을지에 대해서도 전체의 56%가 낙관하지만 20·30대는 36%와 42%에 그친다. 전망이 아닌 확신을 묻는다면 비관이 지배한다. 전체 국민의 80%는 미래 세대의 삶이 자기 세대보다 나을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고 18~35세는 92%가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없다.
이 팽배한 비관과 무기력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갈 길은 이미 나와 있다. 경제적 약자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키워야 하고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 또는 약자를 향한 혐오의 해일에는 굳건히 맞서야 한다.
/장제우 작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