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또 어학연수생 영아 유기

보호출산제·출생통보제 대상 빠져

출산·양육 지원 없어 발생 지적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지하상가 화장실. 지난 20일 이곳에 방치된 검정색 가방에서 탯줄 달린 갓난아기가 발견됐다. 2024.11.22 /김태강 기자 think@kyeongin.com
의정부시 의정부역 지하상가 화장실. 지난 20일 이곳에 방치된 검정색 가방에서 탯줄 달린 갓난아기가 발견됐다. 2024.11.22 /김태강 기자 think@kyeongin.com

지난 20일 오후 5시께 의정부역 지하상가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윤용섭(63)씨는 상가 여자 화장실에서 발견된 가방을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것은 다름 아닌 탯줄이 달린 채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갓난아기였다. 윤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아기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CCTV를 추적해 의정부 소재 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인 베트남 국적의 여성 A(19)양을 검거했으나, A양은 경찰 조사에서 출산과 유기 등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의정부지법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A양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8년 전에도 의정부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여성이 의정부역 출입구 계단에 영아 시신을 가방에 넣어 유기한 사건이다. 당시 아기를 유기한 여성도 베트남 유학생 B(19)양이었다. 임신한 상태로 한국에 어학연수를 온 B양은 학교 기숙사 화장실에서 출산하다 아기가 사망하자 시체를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적·나이·신분이 같은 여성이 출산 직후 영아를 유기한 사건이 8년만에 의정부역에서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영아유기사건을 두고 정부가 관련 법안을 손보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은 요원하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 대상에서 제외돼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경기남·북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이후 경기도에서 발생한 영아 유기 발생 건수는 총 13건으로, 지난해에만 7건이 발생했다.

영아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는 지난해 7월 비교적 범죄 형량이 낮았던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를 폐지해 모두 일반유기·살인죄 또는 존속유기·살해죄 등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는 올해 2월부터 시행됐다. 또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 아기’ 현상을 막기 위해 지난 7월부터는 지자체가 법원 허가를 받아 출생 등록을 할 수 있는 ‘출생신고제’와 임신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인의 아동은 결혼비자로 입국한 여성의 아이가 아닐 경우 출생신고제와 보호출산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가로부터 아무런 출산·양육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출생 등록마저 못한 이들의 최종 선택지가 유기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출산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미혼모를 위한 복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미라 여성인권동감 대표는 “외국인 미혼모 혼자 출산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기관은 극히 드물고, 국내 지원센터에 대한 내용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를 외국인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부터 시작해 외국인 미혼모를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강기자 thin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