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파고들면 모든 것은 인다라망으로 연결

알베르 카뮈 ‘이방인’ 다른 작가 작품서 영감

배재학당-주시경-종로서적 긴밀관계 이뤄

촘촘해진 세상, 누구든 어찌 소홀히 대할까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온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인드라망은 한자로 인다라망(因陀羅網)이라고도 한다. 원뜻은 불교의 신적 존재인 인다라(Indra) 곧 제석천의 궁전 위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그물을 뜻한다. 이 그물에는 구슬이 달려 있고 이 구슬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춘다. 화엄학의 핵심 개념인 인다라망은 전 우주와 일체의 현상이 서로 하나로 연결돼 있어 항상 교류하며 융합돼 있다는 점을 가리키는 비유다. 문학과 역사와 문화도 마찬가지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도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인다라망의 관계에 있다. 그는 ‘백경’의 허먼 멜빌에게서 영감을, ‘나자(裸者)와 사자(死者)’의 노먼 메일러에게서 문체를,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제임스 M. 케인에게서는 작품 및 내러티브 구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작품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는 옷감(織物, texture)처럼 서로 긴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텍스트(text)란 말과 작품 간의 상호영향관계를 뜻하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란 개념 역시 문학에서의 인다라망을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얼핏 보기에는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좀 더 깊게 파고들면 모든 것은 인다라망의 사슬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만 우리가 이를 찾아내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또는 그러한 연관이 보여도 이를 견강부회로 치부하고 말아 바른 통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우리의 근대적 교육기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시기다. 고종의 계비였던 순헌황귀비 엄씨가 양정의숙(양정고등학교)을 1905년에, 명신여학교(숙명여자대학교)를 1906년에 설립했다. 또 민영휘도 1904년 휘문고의 전신인 광성 의숙을, 그의 부실(副室)인 안유풍이 풍문여고 설립에 직접 간여했다. 풍문여고는 민영휘의 증손인 민덕기가 안유풍의 유지를 받들어 1944년에 세운 학교다. 이들보다 앞서 설립된 주요 교육기관은 바로 배재학당으로 1885년에 설립됐다.

그런데 이 배재학당과 주시경과 종로서적이 서로 긴밀한 인드라망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의 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가 세운 교육기관이며, 그 이름과 현판을 고종이 짓고 내려줬다.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은 배재학당 출신으로 서재필의 발탁으로 ‘독립신문’과 ‘협성회보’를 인쇄하던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의 교보원(校補員)으로 들어가 교정을 보면서 식자공으로 일했다. 삼문출판사는 배재학당 지하 산업부실에 설치된 출판사로 한글·영어·한문 등 세 종류의 활자를 구비하고 있어 ‘삼문’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중에 삼문출판사는 감리교인쇄소로 독립해 나갔다.

이곳에서 인쇄된 출판물들은 대부분 1907년에 설립된 예수교서회(기독교서회라고도 한다)에서 판매됐다. 이 기독교서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서점 종로서적으로 발전했다. 종로서적은 1907년 설립된 기독교서회를 모체로 1948년 종로서관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다시 종로서적으로 발전하여 2002년 폐업할 때까지 활자중독자들과 청춘들의 아지트이자 약속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이 모든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아펜젤러 목사는 1902년 인천에서 배편으로 목포로 가던 중 배가 침몰하여 소천했다. 익사 직전의 위기에 빠진 여학생을 구하려다 본인도 같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가 사망한 서천의 마량진은 1816년 9월5일 영국의 해안탐사선 알세스트호(함장 머레이 맥스웰)가 상륙했던 장소로 이때 첨사 조대복에게 영어 성경이 전달되어 이곳이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가 되었다.

이와 같이 세상과 온 우주가 인다라망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인터넷과 SNS로 인해 세상은 더 촘촘해졌다. 세상과 우주와 나와 당신이 이렇게 한데 연결돼 있으니 누구에게든 그 무엇에게든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