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까지 인천 중구 프로젝트룸 신포
4년 전부터 고향 덕적도에서 농사 지은 작가
귀향인도, 외지인도 아닌 ‘새로운 관계’ 맺기
멀티 레이어, 식물 표본 등으로 관계 포커싱

사진가이자 아키비스트인 서은미 작가는 4년 전부터 고향 인천 옹진군 덕적도를 주말마다 드나들었다.
‘귀향’이 아니라 드나듦이고, 정확하게는 ‘농사’를 위해 고향에 머문다. 작고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한두 마지기의 밭은 법률 용어로 ‘농지’이므로 법적으로 농사를 짓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팔아야 했다. 서 작가는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땅을 팔 수 없어 주말 농사를 시작했다.
서은미 작가가 오는 13일까지 인천 중구 개항장 거리에 있는 프로젝트룸 신포(신포로 27번길 67)에서 개최하는 개인전 ‘관계인구(關係人口)’는 고향에서의 4년을 사진으로 담았다.
주중에는 도시에서 생업에 매진하다 주말에만 고향 섬을 찾는 서 작가는 귀향인일까. 고향 사람들도 서 작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고 부모가 평생 산 고향에 머물기로 한 서 작가가 외지인일 수 없다.
전시 제목 ‘관계인구’는 고민 끝에 작가가 고향 덕적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로 결심한 배경이면서 이번 작품들의 포커싱이 되는 개념이다. 서 작가는 외지인으로서 덕적에 계속 관심을 갖고 관여하는 관계인이 됐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청년들이 지방 복구 작업에 자원 봉사로 참여했다고 한다. 청년들은 이때 경험을 계기로 작업에 참여한 지역과 계속 교류하며 자연스러운 관계를 형성했다. 여기서 시작된 ‘관계인구’란 단어의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힘에 주목한 일본 총무성은 이 단어를 정책 개념으로 채택했다.
작가는 고향 덕적도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을까. 전시는 ‘아버지의 바다’ ‘멀티 레이어’ ‘바다’ ‘식물 표본’ 등 4개 섹션으로 나뉜다.
작가가 고향과 관계를 맺고자 한 큰 이유 중 하나는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철회 시민운동을 주도했고 고아들을 돌보며 ‘해외 입양아들의 대부’라고도 불린 선친 서재송(1929~2020) 선생이다. 작가는 그립고 존경스러운 아버지가 평생을 보낸 덕적도와 바다의 풍경을 담았다. 다른 사람에게 덕적과의 관계를 권유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작가는 덕적도를 오가며 매일매일이 똑같아 보이던 바다가 사실 매일이 다른 바다라는 걸 깨닫는다. 30~50번 같은 장소에서 다른 날 찍은 사진을 몽땅 겹쳐 하나의 이미지에 시간을 녹여 넣기도 했다. 이 ‘멀티레이어’로 표현된 인천대교 등 풍경과 사람이 회화처럼 서정적이다.
작가는 밭을 일구면서 그곳에서 자생하는 풀의 표본을 만들어 본다. 100종이 넘었다고 한다. 식물 전문가에게 그 표본들을 보여줬더니, 적어도 40종의 서로 다른 식물이 자신의 밭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가 정성스럽게 말리고 누른 잡초의 표본 사진들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윤진현(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문학박사가 쓴 전시 서문에서는 식물 표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은미가 고향에서 징하게 발견한 것은 농작물과 경쟁하는 소위 ‘잡초’들이다. 주지하듯 인간이 농작물에 권리를 갖는 것은 잡초와 싸워 곡식을 지켰기 때문이다. 서은미는 관계인으로서 자신의 관계 맺기에 마치 변사또처럼 등정해 춘향의 고귀함을 입증해 준 잡초까지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중략)
달개비(닭의장풀)의 남빛 꽃잎이 살아있다. 연하디 연한 달개비 꽃잎을 어떻게 저렇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연인을, 자녀를 만지듯 조심스레 잡초를 다루는 손길이 눈에 선하다. 농부가 아니라서, 오로지 관계인이기에 가능한 사랑이다.”
윤진현 박사는 이번 전시에 대해 “‘관계’는 언제나 보답과 응답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짝사랑처럼 소모적이고 비경제적이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무한 헌신을 요구한다”며 “그럼에도 ‘관계’는 집요하고 섹시하고 성실하고 힘이 세다. 이는 서은미 자신의 자질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서은미 작가는 “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옹진군에서도 각종 귀향·귀농 정책을 펴고 있지만, 도시 거주자가 모든 걸 팽개치고 도전하기엔 장벽이 너무 높다는 걸 느꼈다”며 “그렇다면 ‘와서 살기’를 바라는 정책보다는 적극적인 ‘관계 맺기’를 제안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찾아 서 작가의 농사꾼 분투기를 듣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