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반도에선 퇴행적인 공방 벌어지고
유럽선 北 러시아 파병 등 남북 현대전 위기
韓, 트럼프 재집권에 외교적 입지 위축 상황
尹 정부 이념지향적 가치외교로 타개 난항
한반도에는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남북한이 전단이나 쓰레기를 풍선에 매달아 상대편에 날려 보내는 풍선전쟁이다. 북한이 날려 보낸 풍선은 바람을 타고 서울 시내 곳곳으로 날아와 터지며, 용산대통령실 마당에까지 날아와 터진다. 참으로 너저분하고 퇴행적인 공방을 21세기에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오물풍선이 공중에서 터지면 생화학 물질검사를 하고 수거해야 한다. 풍선이 공항에 접근하면 항공기 이착륙이 통제되는 등 행정낭비도 크다. 전단과 함께 우리 군이 대북방송을 재개하자 북한도 대응방송을 시작해 심각한 소음피해로 경기도와 인천 접경지대 주민들의 삶까지 위협받고 있다.
오물풍선과 방송을 통한 심리전은 도발의 기회를 찾고 있는 북한이 국지전을 유발할 수 있는 도화선이라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심리전이다. 남한의 ‘전단살포금지’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근거로 현 정부는 풍선공방 사태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다급해진 접경지대 지방자치단체가 찾아낸 단속근거는 전단 살포가 항공안전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관련 법규에는 2㎏ 이상의 물건을 매달고 비행하는 무인자유기구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규정이지만 처벌이 가벼워 실효성은 의문이다.
풍선전쟁을 벌이고 있는 남북한은 유럽에서 현대전을 치르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전투병을 파병하자 우크라이나와 나토는 한국 정부도 무기나 전투를 지원하라는 요구를 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과 참관단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자칫 대리전으로 치닫을 조짐이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김정은이다. 6월19일 새 북러조약이 비준되면서 러시아와의 군사동맹 관계가 전격적으로 복원됐다.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한미일 동맹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 지형을 확보한 것이다. 김정은은 러시아에 각종 무기를 지원하고 전투병을 파병한 반대급부로 각종 경제적인 이득은 물론 핵무기 개발에 대한 러시아의 공인과 탄도탄 제조 기술까지 이전받는 군사적 이득을 챙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한국의 남북관계 및 외교적 입지가 더욱 위축되고 있다. 트럼프는 방위비분담금을 현행 1.3조원을 13조원 수준으로 증액해야 한다고 공언해왔다. 또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확장억제 수단에 대한 비용도 다시 청구할 수 있다. 이 같은 비용 청구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하면 미군 철수나 파견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카드를 던질 수도 있다. 한미동맹은 가치연대가 아니라 트럼프식 기브앤테이크 원칙이 관철되는 ‘거래동맹’(?)이 될 판이다.
미국의 북한 해법도 바뀔 것이다. 바이든식 ‘전략적 인내’, 즉 갈등의 심화를 방지하는 소극적 정책은 끝나고 북미 정상회담 추진 등으로 북핵 문제를 적극적 타결하는 트럼프식 관여정책이 예상된다. 북한과 종전협정을 타진하고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전략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지각변동이 이뤄질 때 한국은 논의 테이블에서 배제되고 미국과 북한이 상황을 정리하는 국면이 초래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경직과 단절, 북한의 남북 분리 전략으로 우리가 가진 지렛대는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과 풍선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그리고 평양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하여 제재를 회피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차지하는 사이에,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발목을 잡혀 미국도 잃고 러시아와도 척을 지는 루저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남북관계 협상 드라이브의 구경꾼까지 되고 만다면 상황은 더 끔찍하다. 지금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종전 전략에 대비해야 하는 한편 미국의 대북 협상에도 기민하게 대비해야 할 때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이념지향적 가치외교 정책과 경직된 참모들로 외교 안보의 위기를 타개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의 변화를 주도할 지렛대를 만들지는 못해도 적어도 저 백해무익한 풍선전쟁은 의지만 있으면 당장 중단하여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