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최초 그룹사운드 ‘키보이스’ 비롯해

밴드 태동기 이끈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난해 경인일보 생전 마지막 인터뷰

지난해 12월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주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기타리스트 고(故) 김홍탁. /경인일보DB
지난해 12월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주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기타리스트 고(故) 김홍탁. /경인일보DB

인천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그룹사운드 키보이스를 비롯해 히파이브, 히식스 등을 이끈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홍탁이 7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1944년 인천 내동에서 태어나 창영초, 동산중·고등학교 등을 나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기타를 잡았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동기·선배들과 캑터스(Cactus)라는 밴드를 구성해 인천 미군 부대 등지에서 공연하며 실력을 쌓았다.

고인은 1963년 결성된 한국 최초 그룹사운드 키보이스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한국의 비틀스’라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5인조 히파이브, 6인조 히식스 등 밴드를 이끌며 한국의 밴드 음악 태동기의 중심에 섰다.

잠시 미국에 머물렀던 고인은 1987년 귀국해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95년 우리나라 최초의 실용음악 고등교육기관 ‘서울재즈아카데미’(현 SJA실용전문학교)를 설립하고 2009년까지 원장을 역임했다. 대중음악계의 수많은 유명 뮤지션이 이곳 출신이다.

지난해 12월 경인일보가 보도한 ‘아임 프롬 인천’(2023년 12월 21일자 1·11면 보도)이 고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로 남았다. 고인은 당시 인터뷰에서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경인일보 인터뷰에서 “건국 이래 한국을 빛낸 사람 가운데 음악가가 많았다”면서 “클래식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등이 나라를 빛냈다면 이제는 ‘팝 뮤지션’이 그 역할을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호실이다. 발인은 9일 오후 3시 40분. 장지는 인천 영종도 선산이다.

[아임 프롬 인천·(16-上)] 기타 쥔 열 다섯살에 비로소 태어난 기분… 음악적 ‘귀’ 얻은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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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식스’ 명성‘서울재즈아카데미’ 설립… 후배 양성“내년엔 고향에서 큰 콘서트 열고파” 김홍탁의 유년 시절 인천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김홍탁은 해방 직전인 1944년 인천 내동에서 태어났다.우리나라 최초 록밴드로 불리는 키보이스를 비롯해 히파이브, 히식스 등의 밴드를 이끈 인천 출신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홍탁. 김홍탁의 유년 시절 인천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김홍탁은 해방 직전인 1944년 인천 내동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최초 성공회 성당인 내동 성공회성당이 잘 보이는 집이었다. 김홍탁의 아버지(김창선)는 창영초등학교를 나왔고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법원 공무원으로 일했다. 아버지보다 4~5년 아래인 김홍탁의 어머니 홍정희 역시 창영초등학교 출신이다. 아버지는 책과 공부와 음악을 좋아했고, 어머니는 결혼 전까지 곱게 자란 여성이었던 것 같다고 김홍탁은 기억했다.김홍탁의 유년 시절 기억은 한국전쟁으로 시작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1학년이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김홍탁은 인천 영종도로 피난을 가야 했다. 영종도에는 친척이 많이 살고 있었다.그는 피난 과정에서 아버지·어머니와 잠시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김홍탁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영종도로 피난을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법원 공무원인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끌려갔고 어머니는 집을 지켜야 했던 상황이었다. 김홍탁의 아버지는 1·4후퇴가 지나서야 인천의 한 경찰서에서 식물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발견됐다고 한다.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이 남하하며 점령한 남측 지역에는 북한군의 대대적인 숙청이 있었다. 경찰과 관청 공무원 등은 가장 우선적인 숙청 대상이었다. 이들은 북한군에 의
https://www.kyeongin.com/article/1711533
[아임 프롬 인천·(16-下)] 기타 쥔 열 다섯살에 비로소 태어난 기분… 음악적 ‘귀’ 얻은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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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어른들이 3층짜리 건물을 마련해 주셨다고 한다.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의기소침해진 아들에게 어머니는 기타를 선물했고 김홍탁은 음악에 눈을 떴다. 동산중학교 2학년 김홍탁/김홍탁 제공“그 당시 구하기 힘든 기타를 어머니가 어떻게 사 주셨는지, 너무 행복했어요. 그제야 내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입니다.”김홍탁은 여러 사람에게 기타를 배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은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만난 한 미군 병사였다고 했다.“친한 친구는 아니었는데, 자기 집 2층에 미군이 살고 있고 그가 기타를 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갔는데, 기타 소리가 제게는 ‘천지개벽’처럼 들리더군요. 그 리듬이 무척 좋은 거예요. ‘기타를 가르쳐 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제가 너무 어리다며 거절했어요. 그래도 틈만 나면 찾아갔죠.”1년 조금 넘는 시간을 일요일마다 찾아가 기타를 배웠다. 김홍탁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미군 병사가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프로 뮤지션이었다”면서 “이래저래 운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산고등학교 1학년 시절 김홍탁착실하게 기타 연습을 하며 연주자로서 실력을 쌓아갔다. 김홍탁은 동산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학교 동기·선배 등과 함께 캑터스(Cactus)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캑터스 멤버는 기타를 연주하는 김홍탁을 포함해 동기인 장동선(색소폰)·이백석(베이스), 1년 선배인 김부일(드럼), 전라도에서 기타 선생을 하다 인천으로 올라온 서너 살 위의 조현(기타) 등 5인조로 구성됐다. 김홍탁이 막내였음에도 밴드의 리더를 맡았다.캑터스는 방과 후 신포동의 한 건물 지하창고 연습실에 모여 연습했다. 요즘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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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