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사이 헤집는 ‘MZ 토끼’

해학·풍자 곁들인 현실 축소판

 

무용극으로 재구성한 판소리 ‘수궁가’

무능한 용왕과 어리석은 관료인 자라

영리한 토끼와 각자 욕망 얽히고설켜

몸짓언어로 바꿔 풀어낸 이야기 압권

인천시립무용단 ‘워터캐슬 - 토끼탈출기’ 국립극장 공연 모습. /인천시립무용단 제공
인천시립무용단 ‘워터캐슬 - 토끼탈출기’ 국립극장 공연 모습. /인천시립무용단 제공

“허허이 산다는 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요지경이로고….”

지난 6~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인천시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Water Castle(워터캐슬) - 토끼탈출기’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니리(대사)다. 윤성주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가 원작인 판소리 ‘수궁가’를 무용극 ‘워터캐슬’로 탄생시킨 시작점이 되는 아니리이기도 하다.

수궁가의 용궁이 주식회사 ‘워터캐슬’로, 용왕은 그 회사의 무능한 CEO로, 별주부(자라)는 철저한 계급사회인 수궁의 말단 직원으로, 토끼는 권력자들 사이를 깡총깡총 헤집는 ‘MZ 세대’로 동시대를 반영한 해학과 풍자의 요지경 같은 춤판이 펼쳐졌다. 토끼 역에 장지영, 자라 역에 김기범, 용왕 역에 박성식이 출연한 7일 오후 4시 공연을 관람했다.

첫 번째 신인 ‘어전회의’에선 물 속 동물들이 유영하는 듯한 군무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기다란 테이블이 나타나면서 흑과 백으로 나뉜 회의 장면으로 전환했다. 무용수들이 테이블 사이로 흑백으로 나뉘어 선보이는 밀다가 밀리다가 하는 곡예 같은 안무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이날 관객들은 분명 같은 시각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던 상황을 생각하며 이 장면을 봤을 터다. 아픈 것 같으면서도 다급한 용왕의 ‘무능한 존재감’과 우직하면서도 어리석게 보이는 자라의 ‘느릿한 등장’이 눈에 띄었다.

이어지는 신 ‘상좌다툼’에서는 앞서 유영하듯 부드러운 군무가 땅을 밟고 뛰는 들짐승과 바람을 치고 오르는 날짐승의 역동성으로 바뀌었다. 그 역동적 무대에 끼어들며 훼방을 놓듯 익살스런 움직임을 보이는 건 토끼였다. 들짐승과 날짐승의 무게감 있는 군무 속에서 기가 죽지도, 쉽사리 잡히지도 않으며 무대 이리저리를 뛰놀다가 자라를 만난다.

토끼를 수궁으로 데려간 자라가 용왕과 대면하게 하는 신 ‘토생요설’은 3인무다. 우스꽝스러운 권력자 용왕과 어리석은 관료 자라, 영리한 민중 토끼가 각자의 욕망으로 얽히고설킨다. 판소리 5대가를 무용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 윤성주 예술감독이 가장 먼저 수궁가를 선택한 것은 ‘우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인간들의 이야기인 심청가나 춘향가는 극화하기 수월한 이야기이지만, 말하는 동물이 등장하는 수궁가는 어찌 어색하고 유치하지 않게 극화해야 할까. 창과 아니리를 대사로 바꿀 게 아니라 ‘워터캐슬’처럼 몸짓 언어로 바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훨씬 수긍하기 좋았다.

우여곡절 끝에 뭍으로 탈출한 토끼가 다시 들짐승과 날짐승에 쫓기다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맞이하는 마지막 신 ‘피장봉호’는 “산다는 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요지경”이라는 주제를 강화한다. 점점 토끼를 포위하는 클라이맥스가 돋보였다. 인천시립무용단의 국립극장 진출 무대인 만큼 많은 무용계 인사들이 공연을 찾은 듯했다. 객석에선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점퍼를 입은 학생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공연이 마무리된 후 현실로 돌아왔으나, 현실의 국회에서는 더 극적인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