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고집, 노숙인 시설서 인문학 강좌

5개월간 진행된 강의, 감동의 연속

연장요청 등 다양한 구성에 만족감

사람들 마음에 희망의 씨앗 심는 일

문화·예술·인문교육 기회 확대돼야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문화와 예술, 인문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한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문화 정책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상의 기쁨과 삶의 희망을 선사할 문화예술, 인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지난 여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만남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장관 역시 공감을 표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세요.” 필자는 물론 자리를 주선한 문체부 직원들이 원했던 말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2025년도 정부예산의 기조가 발표됐다. 거기 이런 대목이 들어있었다.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통한 도약과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공공주택 공급도 대폭 확대하겠다.” 모처럼의 귀호강이었다. 취약 계층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대목을 여러 차례 되새겼다.

인문공동체 책고집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국의 노숙인 시설에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특히 올해는 외부의 지원 없이 오롯이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강좌의 명맥을 이어 나갔다. 이른바 ‘곁이 되는 인문학(이하 ‘곁인문학’)’이다.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7개 노숙인 시설과 3곳의 지역자활센터, 장애인복지관 1곳에서 진행한 곁인문학은 그야말로 감동의 연속이었다.

감동은 단지 강의실에 머무르지 않았다. 강사의 강의 후기와 참여자들의 소감과 글을 통해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참여 기관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송파지역자활센터에선 연장 강의를 요청했고, 서울 열린여성센터(여성노숙인시설)에선 프로그램이 너무 일찍 끝났다며 아쉬워했다.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에선 나날이 수강생이 늘어 강의실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원 다시서기센터에선 모 대학에서 수년째 진행하고 있는 정규 프로그램보다 훨씬 좋았다고 했고, 순천 디딤빌(재활시설)에선 다채로운 강의 구성에 만족감을 표했다.

어느덧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설립의 환경과 조건이 무르익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책고집은 작년부터 전국의 노숙인 시설을 돌며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문화와 예술, 인문교육 프로그램의 구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는 1995년 미국에서 시작한 홈리스 인문학 강좌다. 극작가 얼 쇼리스(Earl Shorris, 1936~2012)가 설립했고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한국에선 2005년 성프란시스대학(국내 최초의 노숙인 인문학 강좌)이 설립돼 이듬해 얼 쇼리스를 초대하는 등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의 가능성을 엿보였다. 그러나 성프란시스대학이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12년, 생전의 얼 쇼리스는 한국에도 클레멘트 코스가 설립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유언처럼 남기고 눈을 감았다.

책고집이 준비하는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는 기존의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강좌프로그램이 아니다. 전국의 노숙인 시설과 교도소 재소자를 포함, 취약계층 전반을 아우르는 명실공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문화·예술·인문 교육의 메카를 지향한다. 가뜩이나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사람들을,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법자라는 이유로 또다시 소외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얼핏 빵이나 잠자리, 돈이나 일자리가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고된 삶에 지쳐 망실해 버린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희망이란 게 있을 리 없다.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