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보수 괴멸 위기 놓여… 묘비 세워질 판

정변 막전막후·대응 보노라면 궤멸 넘어서

8년전 탄핵 앞장 尹, 대권주자 된것이 반증

‘좀비’ 안 되려면 英 보수당같은 용기 필요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1920년대 들어 노동당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까지는 자유당이 보수당과 더불어 영국의 양대 정당 구도를 이뤘다. 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를 이념적 바탕으로 60여 년 동안 모두 7명의 총리를 배출한 명문 정당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영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 정당이었음에도 1922년 총리직을 내어준 뒤 단 한 번도 집권에 성공하지 못했다.

영국 태생의 미국 언론인으로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조지 데인저필드가 이렇게 19세기 후반 영국을 지배한 정치사상과 정당이 여성 참정권, 노동조합, 아일랜드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어떻게 내부 분열을 거쳐 붕괴에 이르게 됐는지를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1935년 출판된 ‘자유당의 이상한 죽음(The Strange Death of Liberal England)’이다.

2005년 영국의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제프리 위트크로프트가 자유당의 성쇠와 비교하며 보수당의 앞날을 예측하는 책을 출간한다. ‘보수당의 이상한 죽음(The Strange Death of Tory England)’이라는 제목은 데인저필드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보수당은 앞서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참패했다. 1832년 총선 이후 가장 낮은 득표율과 역대 두 번째의 최저 의석 수를 기록했다. 18년 만의 정권 교체를 두고 BBC는 ‘시대의 끝’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후로도 연전연패.

위트크로프트는 유럽에서 영국의 위상을 둘러싼 보수당 내부 분열, 정치적 천박함,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결핍, 그리고 보수당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적 변화 요구를 보수당 몰락의 원인으로 짚었다. 거듭된 총선 패배로 영국의 동남부 지역에서만 지지기반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동남부 정당’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보수당이 곧 공중 분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지난 수년간 앉아서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혼잣말을 해왔지만 그렇게 돼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역사의 어떤 법칙도 어느 정당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보수당의 운명은 그의 말대로 되는 듯했다. 책 출간 두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도 역시 패했다. 이후로도 5년이나 더 노동당에 권력을 내어준 채 지내야만 했다.

한국의 보수가 괴멸(壞滅)의 위기에 놓였다. 자칫 보수의 묘비가 끝도 없이 세워질 판이다. 지난 3일 밤과 4일 새벽 사이에 벌어진 ‘정변(政變)’의 막전막후와 이후 보수 진영의 대응을 보노라면 궤멸(潰滅)의 정도를 넘어선 듯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의 단두대에 올랐을 때 보수는 이미 궤멸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보수의 목에 칼을 꽂았던 검사 윤석열이 엉겁결에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가 된 그 자체가 보수 궤멸의 반증 아닌가.

그런데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반성할 줄도 모르는 한국의 보수는 어쩌다 정말 운 좋게 다시 손에 쥔 권력의 단맛에 빠져들어 헤어나질 못했다. 그 대열에서 이탈된 자들은 세상없는 상실감을 여기저기 함부로 내뱉어대면서 자기 자신을 애무하기에 바빴다. 궤멸의 순간을 경험했음에도 더욱더 나뉘고 흩어져서 물고 뜯었다. ‘좀비’ 같았다. 죽었음에도 죽었음을 모르고 날뛰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보수가 직면한 이 절멸의 위기는 지연됐던 하관식(下棺式)일 뿐이다. 누군가 책을 쓴다면 ‘한국 보수의 미뤄졌던 죽음’이 딱 맞는 제목이다.

‘보수당이 자유당을 따를 운명인지 여부는 겸손과 오류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을 수 있다’고 위트크로프트가 쓸 무렵 보수당은 벌써 뼈를 깎아 작성한 반성문을 국민들 앞에 조용히 내밀고 있었다. 2004년 발표한 16개 항의 보수주의 강령이다. ‘불공평은 우리를 분노케 하며 기회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와 같은 강령 조항들은 오류로부터 겸손하게 배운 결과물이다. 좌파로부터도 찬사를 받을 정도였으니 돌아섰던 국민들의 마음도 마침내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그럴 용의가 있는가. 아니 그럴 용기가 있는가. 계속 좀비로 떠돌 텐가.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