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에 국민 관심 쏠리며
대한체육회·축협 논란 등 흐지부지
이기흥·정몽규 회장 연임 위기 닥쳐
스포츠 조직 문제 해결 잊지 말아야
기록하고 기억할 때 바꿀 수도 있어
인간의 ‘기억’에 관한 상반된 주장이 있다. 스페인계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자는 그것을 반복할 운명”이라고 하면서 기억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이와 반대로 폴란드계 미국 소설가 숄렘 애쉬는 “기억해 내는 힘이 아닌 잊는 힘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개인의 삶에서 이 두 가지 힘은 모두 필요하다. 과거에 행한 자기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서 실수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수를 자꾸 기억하다가 위축되어 버리는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잊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삶은 기억과 망각의 두 힘이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해 가는 사회적 삶은 ‘오직’ 잊지 않고 기억해 내는 힘만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2월3일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이번 사태로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데에 책임 있는 모든 자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 관심이 대부분 이 사건에 집중되면서 올해 계속 지적되었던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과 대한축구협회의 정몽규 회장의 문제가 점차 흐지부지되고 비상 정국 속에서 이 회장의 3선 연임과 정 회장의 4선 연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기가 생겼다.
지난 11월10일에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대한체육회를 대상으로 비위 여부 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직원 부정 채용, 물품 후원 요구(금품 등 수수), 후원 물품의 사적 사용 등의 사유로 이 회장을 수사 의뢰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 회장 비위 혐의에 대해 수사 기관에 수사 의뢰하고, 이 회장의 직무를 정지했다.
그런데 문화부가 이 회장의 직무를 정지시킨 지 하루 만에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이 회장의 3선 연임을 승인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지난 12월5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발표에 따라 이 회장은 연령 제한으로 IOC 위원 임기를 연장하지 못하게 되어 3선 도전에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계엄령 사태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사퇴할 예정이고 정국의 불안정성 때문에 대한체육회 문제가 유야무야 묻힐 수도 있다는 염려가 나오고 있다. 오는 24~25일 후보 등록까지 이 회장이 3선 연임으로 출마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편 올해 2월부터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에 대하여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자 문화부는 지난 7월부터 축협 운영 전반에 관한 감사를 하였고 11월5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 회장에게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권고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권고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11월 29일에 4선 연임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정 회장은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연임 심사를 요청하였고 현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작금의 비상시국 속에서 스포츠조직의 문제 해결이 최고 우선순위가 되지 못할 수 있다. 이번에 대한체육회나 축협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지 못하여도, 올해 감사 결과에서 나온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이 문제를 일으킨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잊지 않을 것이다.
1989년에 영국에서 발생한 힐스버러 대참사가 보여준 기억의 힘을 믿는다. 영국 축구팀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간의 경기장에서 철조망이 붕괴하여 관중 97명이 압사한 참사는 유가족과 축구팬의 노력으로 27년 만에 압사 사건의 책임자를 규명하고 처벌하였다.
처음에는 사건이 과열된 응원 열기 때문이라고 관중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결국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경찰과 구단 잘못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 경기 관중 관리 체계가 개선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문제를 잊지 않고자 기록하고 기억할 때, 바꿀 수 있다.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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