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를 느낌표로… 도전앞에 장애물은 없다

 

길병원 갤러리에 ‘수작업 공예품’ 전시

직원 대부분 중증 청년… 단순 업무 탈피

‘영상 제작’ 배우며 각종 공모전서 수상

“끝없는 동기 부여 직무 개발에 힘쓸 것”

가천누리 창립 10주년 전시회에서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천누리 제공
가천누리 창립 10주년 전시회에서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천누리 제공

조금 느리게 만들어지는 공예품이 있다. 완성까지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그만큼 정성을 쏟는다. 가천대 길병원 가천갤러리에는 최근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전시됐다.

진열된 비즈공예, 골프공 아트, 손뜨개 작품, 사진굿즈 등 제품들은 모두 장애인 표준사업장 ‘(주)가천누리’ 직원들이 꼬박 일주일 가량을 투자해 만든 것이다.

가천대 길병원 자회사인 가천누리의 직원은 43명 중 41명이 장애인이다. 이 중에서도 대부분이 중증 장애인 청년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올해 8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지원을 받아 공예품 제작을 시작했다.

총 12명의 공예팀이 만들어낸 제품은 집에 전시하거나 실생활에 쓸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중증 장애인인 직원들에게는 이처럼 공예품을 손수 만드는 일 자체가 큰 의미다.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보니 실패도 경험했지만, 여러 차례 연습 끝에 전시회까지 열게 됐다.

가천누리 황인향(60·청각장애인) 팀장은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직원들이 일을 너무 어려워해 작품성이 있는 제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지금은 원하는 공예품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창립 10주년을 맞은 가천누리는 2014년 공개 채용으로 직원 21명을 선발하며 첫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길병원에서 나온 의무기록을 전산화하는 일에 투입돼 수십만건 이상을 처리했다.

이후에는 길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번호표 발행, 수납, 주차등록 등을 돕거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안내 업무를 진행했다.

그러다 2022년 말부터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영상콘텐츠제작 교육을 받으면서 영상 제작 업무에 뛰어들었다. 이전의 단순·반복적인 일보다는 각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처음 이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직원들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나운서 체험, 라디오 세트 경험 등 관련 업무를 접해보면서 물음표는 점점 사라졌다. 본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Vlog)를 직접 제작하면서 편집이나 촬영 능력도 생겼다.

가천누리는 노력 끝에 올해 해남고구마 홍보 유튜브 영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상(2위)을 차지했고,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최·주관한 ‘2024 장애인 미디어 콘텐츠 공모전’에서 장애인 제작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같은 도전정신은 이제 가천누리 직원들의 자부심이 됐다. 지수원(30·지체장애인) 과장은 “서로 배우고 알려주면서 직원들 간 유대감도 커졌다”며 “가천누리를 떠난 동료들이 다른 직장에서도 잘 적응해 업무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가천누리는 앞으로도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하거나 전시회를 여는 한편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직무 개발에도 힘쓸 계획이다. 양승현 가천누리 대표는 “가천누리는 장애청년들에게 끝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AI를 포함한 교육 프로그램, 현장 체험 등을 통해 열정과 도전의지를 심어주고 있다”며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참여를 늘리는 등 장애인이 행복한 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개소 부터 10년을 함께한 정지영 실장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뿐… 날마다 성장하는 모습 감사”

가천누리는 43명의 직원 중 양승현 대표와 정지영(사진) 실장만 비장애인이다. 특히 정 실장은 가천누리가 처음 문을 연 2014년부터 항상 함께했다.

정 실장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감회에 젖을 때가 많다”며 “장애와 관련된 일을 접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아주 멀게만 느껴졌었다”고 했다.

가천누리는 창립 당시 장애인 10명을 채용할 계획이었다.

정 실장은 창립을 준비하면서 “일하고 싶다”는 이들의 면접을 보게 됐다.

정 실장은 “편견이 있었다. 혹시나 말이 안 통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컸다”며 “면접을 보다 보니 대부분 아주 소박한 꿈을 가진 평범한 청년들이었다”고 했다.

가천누리는 이들의 간절함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당초 계획보다 2배 많은 21명을 채용했다. 정 실장은 “성과보다는 성실함을 중요시하며 직원들과 함께했다”며 “단체 생활이 처음이었던 직원들은 마음의 문을 여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소란스러운 사무실, 조율되지 않는 의견 등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정 실장은 진심 어린 사랑으로 이들을 대했다고 한다. 성실함, 단정함, 청결함의 중요성 등을 반복해서 알려줬다.

정 실장은 “맞춤형 업무지도와 반복적 연습을 거친다면 장애인이라도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각자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한 직원들이 됐다.

정 실장은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며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10년의 세월 동안 날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직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며 “앞으로도 협력하면서 늦어도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