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소설 ‘박력 있게 스파이크’ 민음사 릿터 소개
“내 캐릭터 소소하지만 비범한 면모 있기를”
‘031-231-5385’.
편집국에서 이 전화기가 울리는 일은 드물다. 신춘문예 공모 시즌인 11월과 12월, 두 개 달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단, 예외가 있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뜻밖의 용건은 ‘이준아씨’를 찾는 것. 발신자는 몇몇 문학 출판사였다.
문학도들 사이에서는 ‘신춘고아’라는 자조적인 조어가 심심치 않게 쓰인다고 한다. 그만큼 등단 이후의 길이 비좁다는 의미일 테다. 하지만 그는 금세 반갑게 돌아왔다. 제목은 ‘박력 있게 스파이크’. 민음사의 인기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12월호에 실린 단편이다. 지난 10월에는 문장웹진에 ‘청의 자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준아(39),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作 ‘하찮은 진심’)는 그 좁다는 길에 한 발을 내디뎠다. 지난 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경인일보 본사에서 만난 그는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오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다만 이젠 습작이 아닌 청탁을 받아서 소설을 쓰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청탁받은 소설들을 열심히 집필하고, 마감을 지키는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며 등단 이후 조금은 달라진 일상을 떠올렸다.
신작 ‘박력 있게 스파이크’… “한 방을 비장의 무기로 품고 사는 직장인의 마음”
평범한 답변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을 향한 그런 상투적인 편애와는 달랐다. 소소한 말들 속에서 그가 쓴 단편작들이 은연 중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준아의 등단작 ‘하찮은 진심’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에서 눈에 띄는 대목도 “이야기 형식에 대한 참신한 시도 또한 이 신진 작가의 역량을 느끼게 하는 점이다. … 면밀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인간 삶의 소소하면서도 소중한 진실을 우리에게 들려주기를 기대한다”였다.
그가 쓴 이야기는 겉보기엔 가볍다. 하지만 읽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일상에 너무도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 세세히 따져보면 부당하지만 보편 다수가 묵인하고 있는, 그런 무미건조한 부조리를 그린다. 일독하기 ‘편한 글’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엔 왠지 꺼림칙하다.
신작 ‘박력 있게 스파이크’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부영’, ‘산드라’, ‘효원’. 이 세 여성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들과 보편적인 세계 사이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쌓아간다. 눈에 바로바로 읽히는 글자들은 무겁지 않지만, 인물 하나하나를 뜯어서 생각해보면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배구 선수 출신이라 누구보다 강하게 공을 내려칠 수 있는 주인공. 그런 그가 무게가 없다시피 한 종이 쪼가리를 쥐어 들고 사무실 건물 옥상에 올라가 “효력 없는 스파이크는 원래가 내 전문이니까”라고 진실하게 긍정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공과 종이는 다르다. 아무리 세게 쳐내도 종이쪼가리는 누군가에게 곧바로 타격을 입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옥상을 향해 걷는다.
이준아는 “‘그런 마음, 그런 한 방을 비장의 무기로 품고 사는 직장인의 마음은 어떤 걸까요?’라는 질문을 담당 편집자님이 역으로 했었는데, (어떤 해석이나 답이 아닌) 그런 질문이 딱 맞는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준아와 ‘Lee Grace Junna’… 경계선에서 ‘글쓰기’를 고민해 온 시간
엄밀히 말하자면 이준아는 재외국민이다. 그에게 신춘문예 상금을 전달할 때 계좌 예금주에는 한글이 아닌 영어로 된 이름이 적혀있었다. ‘Lee Grace Junna’. 태어난 건 미국이나 자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초·중·고등학교 시기는 한국에서 보냈다. 스무 살이 돼서는 다시 미국으로 가 대학에서 연극영화, 그중에서도 극작을 전공했다.
그는 “연극을 배울 때 어떤 변화들을 접했다. ‘제4의 벽’을 깬다고 해야 할까. 관객에게 갑자기 말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독백으로 나아가는 연극도 있었다. 이렇게 접했던 것들이 소설 쓸 때도 나와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는 마흔, 늦은 나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면 마냥 늦은 때 그는 소설가가 됐다. 그전까지는 카피라이팅 등 홍보 콘텐츠 시나리오를 쓰는 상업적인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와중에 소설을 쓰고 있다. 두 직업은 천차만별이나 ‘작가’라는 동일한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상업적인 글쓰기는 본질보다 부풀려서 꾸미는 일이다. 재밌기도 하지만 가끔은 ‘현타’가 올 때도 있다”며 “그러니깐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해서 사회 공헌을 하는 듯이 보이나, 사실은 이익을 위한 일들이다. 그런 아이러니함을 소설 쓸 때 한 번쯤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영어와 한국어, 극작과 순문학, 그리고 카피라이터와 소설가. 이런 경계선에 서 있던 경험은 어쩌면 그만의 특징을 만들어낸 요인인지도 모른다.
차기작들에 담길 캐릭터는?… “소소하게 보이나 소소하지 않은, 은은하게 돌아 있는”
신춘문예로 등단해 1년여 만에 웹진과 주요 문학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주어진 청탁 의뢰를 그저 묵묵히 수행해왔다고 겸허하게 이야기하지만, 분명한 건 곧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딸에게 이제 “엄마는 소설가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물어볼 때가 있었어요. ‘엄마는 사실은 작가가 되고 싶었어’라고 답을 했는데, 사실 생업도 작가이긴 했죠.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사실 엄마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지난 1월에 등단하고 나서조차 곧바로 소설가가 됐다고 차마 말이 안 나와서…. ‘엄마가 소설가를 해도 된대’ 그렇게 얘기했죠. 지금은 ‘엄마는 소설가야’라고 얘기하죠.”
작가가 아닌, 소설가 이준아. 그에게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소소한 것 같아 보이지만 소소하지 않은 개인”이라고 답했다. 그러고서는 “대단한 인물, 굉장히 잘난 사람을 쓰게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그 이유는 곱씹을수록 묘했다.
“겉으로 봤을 때 매우 개성 있고 누가 봐도 눈에 띄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은은하게 ‘돌아 있다’ 싶은 포인트가 있는, 저는 그런 인물들한테 굉장한 매력을 느껴요.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고 비범한…. 때로는 시간이랑 비례하지 않게 곧바로 그런 느낌이 와 닿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소설 속 제 캐릭터들도 그런 면모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단편 차기작이 실릴 예정이라는 자음과모음의 계간지 ‘2025 겨울호’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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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하찮은 진심’┃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문장웹진 ‘청의 자리’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51호 ‘박력 있게 스파이크’(168~193p.)┃민음사, 260쪽, 1만3천원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