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의 권능을 의미하는 ‘삼지창’

세곳에 바다·땅·하늘 모두 관계돼

우리 바다 매년 350명 목숨 앗아가

해경 1만3천명 누비며 안전 책임져

한국 ‘고대 그리스 영광’ 재현될 것

김용진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
김용진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

B.C. 1천100년경 형성된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은 최초의 해양문화 동맹체였다. 이들은 지중해 무역으로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패권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바다를 누비는 그리스인들에게도 바다는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난폭하고 변덕스러웠다. 거친 파도를 만들고 바람과 지진을 일으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선사시대 이후 한반도에도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제사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바다에는 여러 모습의 포세이돈이 있었던 것이다.

포세이돈이 파도와 바람, 지진을 일으킬 때 사용하는 도구는 트라이던트(trident)라는 날카로운 삼지창이다. 삼지창의 세 끝은 각각 바다, 땅, 하늘에 미치는 해신(海神)의 권능을 의미한다. 포세이돈의 권능이 세 곳에 미치는 것은 바다 안전이 땅과 하늘, 모두 관계되기 때문이다. 광포한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바다, 땅, 하늘 모든 곳에서 막아내야만 바다가 안전할 수 있다.

2024년 대한민국의 바다는 어떠한가? 해금(海禁)의 나라에서 해양국가로 거듭나면서 바다는 경제와 먹거리, 휴식과 레저 등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꿈과 희망의 공간이 되었다. 바다를 찾는 국민이 늘고 있지만 국가와 국민의 노력으로 더 안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포세이돈이 포효하는 바다는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리 바다에서 포세이돈은 매년 약 3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우선 삼지창의 첫번째 갈래인 바다를 살펴보자. 우리 바다에는 지금도 함정, 항공기, 파출소, 구조대 등 1만3천여 해양경찰이 누비며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또한 급변하는 바다에 대응하고자 첨단기술과 정책을 적용한 전천후 함정, 고속구조정, 수중 로봇 등을 확충하고 정밀한 해양기상 예측과 AI활용 예측시스템 등 기술적 측면도 보강하고 있다. 해양경찰의 힘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는 2만여 명의 민간 해양재난구조대, 해양구조협회 등 바다가족이 힘을 모아 인명과 재산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방패가 뚫리는 순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은 ‘구명조끼’이다. 이를 독려하고자 대규모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다음으로 바다와 연결된 땅, ‘연안’을 살펴보자. 국민이 찾는 바다는 해수욕장, 갯벌 등 대부분 연안이므로 국민의 해양상식과 안전의식이 더욱 중요하다. 해양경찰은 ‘연안사고 예방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다양한 안전관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국 811개소 위험구역 설정 및 안전시설물 설치, 36개소 출입통제 지정 등 예방조치와 함께 국민의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 등을 병행하고 있다. 연안은 해양경찰과 지자체, 군, 기업, 민간단체 등이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고 함께 활동하는 융합 안전관리 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포세이돈의 거센 바람 ‘하늘’을 살펴보자. 하늘은 해양재난과 가장 가까운 영역이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해양경찰의 하늘은 현실의 범주 안으로 들어왔다. 해양경찰은 6대의 비행기와 19대의 헬기를 띄워, 바다를 살피고 귀중한 인명을 구조하고 있다. 현재 무인비행체 27대와 멀티콥터형 드론 50대를 도입해 안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2027년부터는 해양경찰 인공위성을 도입해 입체적 관리체제로 변화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군, 지자체, 민간의 항공기와 드론을 연계한 수색구조 시스템을 확대하여 우리 바다의 하늘을 더욱 촘촘하게 관리해 나가고 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다가 우리 삶의 중심으로 다가왔고, 해양경찰을 비롯한 많은 기관과 국민의 노력으로 더 안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위험하고 두려운 공간이며, 언제라도 분노한 포세이돈이 쏟아내는 번개와 폭풍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방어하는 최후의 방패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 협력일 것이다. 바다에서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평소 해양지식과 안전수칙을 익히고 충분한 안전장비를 갖추며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서로 돕는 성숙한 해양문화가 정착되는 그 날, 해양강국 대한민국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광이 재현될 것이다.

/김용진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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