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부터 탄핵가결까지
수석비서관 이상 참모진 줄사의
1차 표결 무산후 계엄 전말 드러나
12월3일 오후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담화가 시작됐다. 담화문을 읽어 내려가던 윤 대통령은 오후 10시 28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겠다는 이유였다.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완수 육군 대장은 오후 11시 30분 포고령 제1호를 발령했다. 자정이 지나자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본청 출입문에서 국회 관계자와 계엄군 간 대치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일 오전 12시 48분 국회 본회의가 열렸고, 오전 1시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재석 국회의원 190명이 전원 찬성했다.
계엄이 효력을 잃으면서 군 병력도 점차 철수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7분 다시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해제했고,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여 만이었다.
후폭풍이 시작됐다. 4일 오전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진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을 추진하고 이들을 내란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오후 2시 40분 민주당 등 야6당이 국회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제출했다. 야당이 제출한 탄핵 소추안은 5일 새벽 곧바로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탄핵 소추안 국회 표결 시점은 7일 저녁으로 정해졌다. 국민의힘은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고, 10시간을 넘긴 회의 끝에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침묵하던 윤 대통령이 7일 오전 10시 대국민 담화를 열고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했다. 오후 5시 국회 본회의가 시작됐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김건희 특검법 표결을 마친 뒤 당론에 따라 모두 퇴장했다. 탄핵 소추안 표결이 시작됐지만 회의장에는 탄핵 소추안 가결 정족수(200명)에 7명 모자란 193명만 있었다. 여당 소속 의원 중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 3명만 표결에 참여했다. 오후 9시 20분 탄핵 소추안은 정족수 미달로 표결 성립이 무산됐다.
탄핵 표결 무산 이후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전말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국은 또 한 번 요동쳤다. 박완수 육군참모총장 등 계엄에 참여한 군 지휘부가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현안 질의를 통해 ‘계엄 선포 전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로 증언하면서다.
윤 대통령에 불리한 군 지휘부의 증언이 잇따른 가운데 윤 대통령은 12일 계엄 선포 이후 4번째 담화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조치를 내란 행위로 보는 것은 우리 헌법과 법체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며 “탄핵하든 수사하든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광란의 칼춤’이라는 표현을 담화문에서 두 차례 언급하는 등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강공으로 나서자 여당 내부는 격랑에 휩싸였다. 한동훈 대표는 “오늘 담화는 반성이 아닌 합리화다.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라며 “당론으로서 윤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하는 제안을 드린다”고 입장 선회에 나섰다. 오세훈·유정복·김태흠 등 그동안 탄핵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친윤계를 중심으로 여전히 ‘탄핵 반대’ 당론이 유지됐고,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권성동 의원은 “탄핵 부결 당론을 뒤집기 쉽지 않다”고 언급하는 등 여당 내 혼란이 그대로 드러났다.
14일 2차 탄핵소추안 표결전 까지도 국민의힘 원내는 ‘부결 당론’로 결론을 냈지만, 내부에서 찬성표가 나오며 계엄령 선포 시점부터 11일 만에 탄핵안이 가결됐다. → 그래픽 참조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