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배경에 언급된 ‘부정선거 음모론’
세치 혀서 시작되지만 바로 잡기 쉽지 않아
좌우 가리지 않고 극단선동 일삼는 유튜버들
제정신으로 정치하려면 구독부터 해지해야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던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헌정사상 세 번째 국회 탄핵안 가결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낳았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부터 탄핵안이 발의·가결로 이어지는 과정은 우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아닌 계엄’으로 국가 위상이 추락해 국격이 훼손되고 국민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도 사실이다. 우리 경제는 불확실성으로 타격을 입었고, 이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 외신이 “이기적인 계엄 선포 비용을 5천100만 한국인이 오랜 시간 할부로 갚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씻지 못할 죄가 됐다. 이제부터는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짓는 헌법재판소의 시간이지만 윤 대통령에게 낙관적인 전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담화에서 밝혔듯, 이번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에는 선거 시스템에 대한 의심을 품는 일명 ‘부정선거 음모론’이 존재한다. 계엄군이 선관위를 점거하고 서버 탈취를 시도한 것도, 이러한 전제 아래 이뤄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에 대해 “자신이 당선된 선거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심취해 스스로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은 부정선거 음모론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음모론의 원조격은 아이러니하게도 좌파 성향의 정치 유튜버다. 정치 유튜버 김어준씨는 과거 18대 대선에서 개표 조작과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다양한 검증 과정을 통해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밝혀졌음에도, 이에 대한 의심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파만파 커졌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음모론은 한낱 세치 혀에서 시작되지만, 이를 바로 잡기란 쉽지 않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선거에서 패배한 진영으로 옮겨 붙는다. 개표기 도입으로 시작된 음모론은 사전투표 전체로 확산됐고, 이제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됐다. 선거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양지 위에서 피었다가, 검증에서 패배하면 음지로 다시 숨어든다. 일부 보수 정치권에서 시작된 22대 총선 결과에 대한 부정선거 의혹은 극우 유튜버들의 일명 어그로(aggro) 끌기 용에 활용됐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극단적 지지층이 이를 흡수했다.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관련 소송이 수백 건에 달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각하·소취하 등으로 판결해 단 1건도 소송을 인용하지 않았다. 음모론을 맹신하고 있다면, 결국 사법체계도 부정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영역이 유튜브가 됐다. 구독과 조회 수로 떼돈을 버는 정치 유튜버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극단적인 정치 선동을 일삼는다. 막장 드라마 보다 자극적이고 SNL보다 웃긴 우리 정치권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줬다. 선거 때만 되면 유력 정치인들이 구독자가 많은 정치 유튜버들의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굽신거리며 줄을 선다. 그렇게 유튜브 패널로 옷을 갈아입은 정치인들은 자기반성보다 진영의 대변에만 몰두한다. 내편들기에만 그 좋은 머리를 쓴 셈이다. 할 말은 하는 소장파(少壯派)가 정치권에서 실종된 이유도 정치유튜버와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은 데 있다.
대통령이 정치 유튜버 선전에 심취해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며 ‘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실 자체가 얼굴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럽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정치 유튜버에 대한 심취는 윤 대통령만의 일일까? 이 홍역을 겪고도 정치권은 지난 13일 유튜버 김어준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국회로 불렀고, 그는 또다시 출처를 명확히 밝힐 수 없다면서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사살 계획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 음모론은 또다른 정치유튜버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고, 썸네일로 유튜브 채널은 도배됐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니 정치인들에게 일갈하고 싶다. 제정신으로 정치하려면, 정치 유튜버 구독부터 해지하라고.
/김태성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