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4만9천여명 시국선언 ‘눈길’
집회 참여자의 절반이상이 MZ세대
응원봉·K팝, 촛불·민중가요 대신해
아이들 손 잡고 국회앞 나온 부모들
세대간 소통·민주주의 학습의 장으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지난 11월13일 경희대 교수들이 발표한 시국 선언문의 첫 문장이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110개 대학 6천명을 넘어섰다. 가톨릭 사제들도 참여했다. ‘어째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제목 하에 “우리는 뽑을 권한뿐 아니라 뽑아버릴 권한도 함께 지닌 주권자”임을 천명하였다.
시국선언은 현직 교사들에게도 이어졌다. “이 시국에도 교사는 정치 기본권이 없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면서 “하지만 교사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데 있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학생들에게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면서 “우리 교사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끝까지 행동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교육학자 1천여 명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는데 이들 시국선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청소년 4만9천52명이 서명한 분노의 선언이었다. “지금 행동하지 못한 청소년이 커서 제대로 행동하겠느냐”면서 “폭력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너뜨리고 후퇴시키려 드는 대통령을 우리가 거부한다. 윤석열을 탄핵, 내란죄 처벌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몰아내야한다”며 “청소년도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서 행동할 것이며,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 12월3일 밤 내려졌던 느닷없던 비상계엄 선언. 그리고 이어진 탄핵집회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현상을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16년 촛불집회의 재연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새로운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촛불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자리에 응원봉의 빛이 휘황찬란했다. 그리고 집회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MZ세대의 젊은이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여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운동권 세대들이 불렀던 민중가요 대신에 아이돌그룹의 K-POP을 부르면서 축제 같은 집회가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모든 기성세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 이들이 저렇게도 간절하게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가? 왜 젊은 세대가 탄핵집회에 적극 참여했는지는 청소년들이 참여한 시국선언문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윤석열은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청소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퇴진 집회를 이유로 청소년단체가 표적 수사를 당했고,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 풍자 만화가 경고를 받았다.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직접 학생들의 두발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의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고 주문했다. 국가인권위원장 자리에는 인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 온 사람을 앉혔다. 윤석열은 연설 때마다 자유를 외쳤지만, 시민의 자유는 물론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에도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에게 민주공화국의 대통령 자격이 없음이 분명해졌다…’. 인권과 자유 억압, 시민의 자유와 소수자 인권에 적대적이라는 점에 청소년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이번 빛의 혁명은 우리 모두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심어준 의미 있는 민주시민교육의 장이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현장을 다음 세대들에게 직접 보여주고자 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세대 간 소통의 장이었고 민주주의를 학습할 수 있는 장이었고 희망이 가장 큰 힘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 장이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이 우리 사회를 지키고 다음 세대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줄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이번에 배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이 부정적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는 점도 인식할 수 있었다. 대다수가 대학교육 이상을 받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잠시 후퇴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번 계기에 분명히 각인시켜 주었다.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하리라.
/성기선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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