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이 청년층에 미친 영향

태어날 때부터 보장됐던 민주주의

취업·젠더갈등 등도 ‘무관심’ 이유

포고령 때 섬뜩함 느껴 심각성 인지

정치와 불가분… 이번 사태로 설명

# ‘정치 참여’ 어떻게 해야할까

주눅 든 사람 없이 의견 낼 수 있게

여성 혐오 등 ‘사회적 해결’ 중요

교육과 인식 등 여러 환경 변화와

다양한 사회 주체 귀담는 노력 필요

지난 9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아주대학생 110명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2024.12.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지난 9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아주대학생 110명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2024.12.9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탄핵 전야였던 지난 13일, 경인일보는 경인지역 대학생 3명을 만나 ‘긴급 대학생시국토론회’를 열었다. 그들은 20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을 옭아맸던 ‘탈정치’ ‘중립’의 가치가 사실은 입을 막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게 하는 족쇄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스스로 족쇄를 풀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국토론회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목소리를 낸 학생들은 학우들과 뜻을 모아 시국선언문을 작성하고 배포한 아주대학교 이진씨와 호외 학보를 발행하고 있는 한신학보 편집장 최지우씨, 가천대신문 편집장 김주영씨다.

이진(아주대).
이진(아주대).

Q. 계엄령 선포 후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각자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나.

이진: 학내 대자보를 작성해 붙였다. 계엄령 직후 시위를 많이 다니고 있는데, 나혼자만의 움직임으로 끝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무런 계획없이 SNS에 시국선언문 대자보를 쓸건데 같이 할 사람은 목소리를 내달라고 올렸고 50여명이 모였다. 그중 내가 아는 사람은 10명도 채 안된다. 시국선언문 작성할 때도 단톡에 초안을 올리고 다같이 수정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지우: 한신학보에서 글로 (우리의) 입장을 내고 있다. 학보 발행이 끝난 상황이라 온라인으로 호외보도와 속보를 냈고 기자들도 현장에 나가 계속해서 취재를 하고 있다. 포고령이 올라왔을 때 계엄령 선포와 달리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 계엄령 선포 당시에 학보사 보도까지 검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기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Q. 이번 계엄령 사태는 2030세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는 분석이 많다. 사실 2030세대가 일명 ‘무당(無黨)층’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는데 어떤 변화 때문에 이토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나.

주영: 청년들이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 눈 앞에 놓인 취업 걱정이 더 현실적이게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이야기는 꺼내면 싸움거리가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령 사태는 서로 다른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한군데로 모이는 사안이다. 그래서 시너지가 난 것 같다.

지우: 중장년층은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반면 청년세대는 민주주의 체제가 태어날 때부터 보장돼 있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관심이 적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청년 세대가 젠더갈등과 세대갈등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회적인 억압을 내면화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고 본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요소에 대한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었다는 뜻이다. 근데 계엄령 선포는 다른 것들과 달리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청년세대가 확신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본다.

이진: 젊은이들에게 퍼져있는 정서는 탈정치인 거 같다. 탈정치의 본질은 일상과 정치를 나눠놓는 것인데, 실상은 일상과 정치는 불가분하다. 예를 들면 대중교통은 끊임없이 파업을 하고 학식을 먹어도 급식 노동자들의 어떤 노고가 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고, 그렇지 않은게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상과 정치 사이에 차단막을 둬서 두개가 별개인 것처럼 보이게 한, 일종의 착시효과가 청년층에게 먹혔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이 이번에 탈정치라는 그 이데올로기를 벗어내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건 그만큼 이번 사안이 중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상과 정치가 사실은 불가분하다는 것을 이번 계엄이 드러내 줬다고 생각한다.

김주영(가천대).
김주영(가천대).

Q. 20대 여성이 주축이 된 문화가 집회 현장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많다. 반면 현장에선 여성혐오가 눈에 띄는 경우도 있고, 또 본인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회의 이러한 단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지우: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갈등이다. 지난 대선때에도, 당장 동덕여대사건만 봐도 남녀갈등이 얼마나 심화됐는지 알 수 있고 몇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사회학과라 토론을 많이 하는 곳인데도, 이전 선배들은 남녀갈등 토론을 하면 몇시간이고 할 만큼 서로 열려있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오히려 너무 심각하다보니 말을 안하려고 해서 토론 진행이 잘 안된다. 이번에 싹을 틔운 만큼 갈등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진: 시민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탄핵이라는 절대적인 명령이 완수된 뒤에도 계속해서 책무를 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20대 여성을 비롯해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중하게, 모든 시민이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인터뷰에 나선 이유도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이 오프라인에서 받을 수 있는 공격의 강도가 다르다. 모든 이들이 주눅들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주영: 하나의 큰 사건이 다른 작은 사건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탄핵 시위에서 남녀갈등이 언급되는 건 초점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좀 더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지우(한신대).
최지우(한신대).

Q. 역사의 혁명은 사실 그 시대 청년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된 것이 많다. 이번 비상계엄 이후 청년들이 어떻게 정치와 사회에 참여해야 할까.

지우: 교육을 비롯해, 청년에게 주어진 여러 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중고교때 선생님도 정치적 발언을 못할 만큼 획일적인 교육을 받는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면 정치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는데, 대학생들이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하고 대학에서도 학회 등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건전한 장소가 활성화됐으면 한다.

주영: 사회적인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청년들이 정치와 삶이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깨우치는 게 일순위 과제다. 이를 위해선 공교육에서 청년들의 정치 참여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진: 한국 정치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산적해 있는 많은 목소리를 식별하고 여과하는 능력이 다양성과 포용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극단적으로 들리는 문장이 아니라 다수의 아우성같은 목소리를 식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학생들은 겸손한 자세로 여성, 노동자 등 사회의 다양한 주체에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공지영·이시은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