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규정할 사자성어 ‘도량발호’

권세를 업고 함부로 날뛴다는 뜻

그 최악의 사례가 비상계엄 선포

박근혜 국정농단 보다 수위 높아

‘뿌리인 국힘의 심판’은 국민 몫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얼마 전 교수신문은 올 한 해를 규정할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 권세를 등에 업고 함부로 날뛴다는 말로 장자 소요유(逍遙遊) 마지막 장에 나오는 동서도량(東西跳梁)에서 따왔다. 그 최악의 사례가 이번 비상계엄 선포라는 것이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때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보다 수위가 높다.

12·3 비상계엄 관련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가 사본은 대통령실로, 정본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재는 사건번호 ‘2024헌나8’ 심리를 통해 대통령의 헌법이나 법률 위반 여부를 따져 파면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제부터 헌재에서의 대통령 신분은 피청구인이다.

그러나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가 형법상 내란죄를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내란죄는 딱 두 가지다. 국토참절(國土僭竊)과 국헌문란(國憲紊亂) 목적의 폭동이다.

정치학계에서는 이번 비상계엄을 친위 쿠데타(self-coup)로 본다.

친위 쿠데타는 국가 행정 수반이 다른 헌법기관의 기능을 방해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일으킨 폭동을 말한다. 우리 헌정사에서는 1972년 박정희의 10월 유신에 이은 두 번째 친위 쿠데타다. 과거 5·16 군사반란이나 전두환의 12·12 사태와 같은 일반 쿠데타와 구별된다.

이제 헌재와 법원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에 대한 심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친위 쿠데타의 줄기와 잎사귀에 대한 재판일 뿐 뿌리에 대한 심판은 국민들의 몫이다.

친위 쿠데타의 공통점은 그 뿌리가 ‘정당’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10월 유신의 뿌리는 민주공화당이었고 윤석열 친위 쿠데타의 뿌리는 국민의힘이다. 민주공화당과 국민의힘 공히 ‘1호 당원’이 모두 쿠데타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국힘, 스스로 무너진후 태어나야

민주당은 더욱 겸손해지길 바라

양심적 보수·합리적 진보의 집합

‘국민의 어젠다’가 되어야 바람직

이번 사태로 세가지 이득 얻었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무너져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많은 사람은 국민의힘이 용산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국회에서 입법부로서의 국민의힘은 행정부 대통령실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도 하지 못했다. 이는 헌법의 삼권분립을 해태(懈怠)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의 친정 검찰이 공정하지 않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극우 유튜버를 포함한 일부 신문 방송이 비상계엄 결심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국민들은 헌재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의 모습을 유심히 주시할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모습은 이제껏 해보지 않은 새판을 짜야 국민들이 좋아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겸손해져야 한다. 예기치 못한 상대의 자살골로 대선의 기대가 커졌다고 날뛰지 말아야 한다. 자살골이 나왔을 때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법이다.

상대가 이번 친위 쿠데타의 이유로 내세우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서는 향원(鄕愿)의 냄새도 난다. 향원은 겉으로는 덕이 있는 체하며 실제로는 자기 실속을 챙기는 시골 원님이다.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와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부인의 법인카드 사용 등은 재판 결과를 떠나 국가적 대의(大義)와는 거리가 있다. 적지 않은 국민은 과거 김대중·노무현의 사법리스크와 비교해도 국민적 명분이 약하다고 본다.

이제 다시 양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집합(集合)이 국민의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번 친위 쿠데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37년 만에 사회 곳곳에서 느슨해지고 구멍난 우리 민주주의의 고삐를 다시 조이는 기회가 됐다.

양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집합을 국가 어젠다로 하는 헌법 개정의 때가 온 것이다. 보수는 아스팔트 극우나 친일 극우를 떼어내고, 진보는 과격한 진보나 간첩과 담을 쌓아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안철수 의원의 일관된 자세와 유정복 인천시장의 탄핵 찬성 입장 표명 같이 극우들의 비난을 감수한 양심적 보수들의 행동이 더 많이 주목받아야 한다.

우리는 늘 힘들 때 빛을 발하는 저력이 있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세 가지 큰 이득을 얻었다.

하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주의 현장 교육을 제대로 시켰다. 그들의 열정과 꿈이 우리 국가 미래의 원동력이라는 실체도 확인했다. 둘째는, 매일 쌈질만 한다며 정치 혐오와 불신의 온상 취급을 받던 국회가 그 존재의 엄중함을 국민들에게 새삼 각인시켜 한국 의회정치의 새 도약을 기대하게 됐다. 셋째는, 줏대 없이 따라 하기만 하는 국무위원들의 부화수행(附和隨行)에 대한 각성의 기회가 됐다. 이는 우리 공직사회 전체의 풍토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회복력은 더욱 강해졌다. 장자는 소요유에서 고위 공직자들에게 이렇게 결론을 냈다.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그래봤자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고 말지.’(不避高下 中於機辟 死於罔罟)

/박영복 前 인천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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