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주름과 반비례하는 ‘친구’
근심·걱정만 끈질긴 절친으로 남아
소크라테스도 ‘통제 못해 무시’ 표현
계엄 등 나라 안팎으로 불안하지만
올 연말 ‘절친’은 잊고 행복 하시길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대부분 사람은 12월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보면서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실, 올해가 가장 빠르게 느껴지지만 아마도 내년이 되면 내년이 더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 이마의 주름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하여 줄어드는 것이 친구들이라고 한다. 특히 은퇴한 사람들에게는 만남이 은퇴 이전처럼 쉽지 않다고 한다. 일정한 수익의 부재와 함께 지출 부담, 건강 문제 등이 겹쳐 자연스럽게 만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변함없이 내 주변에 끈질기게 붙어있는 절친한 친구가 있다. 바로 ‘근심과 걱정’이라는 친구이다. 늘 붙어있으며 떠나지도 않고 나의 모든 일을 간섭하며 하루하루의 삶에 간여(干與)한다. 연말 망년회(忘年會)는 매일 붙어있는 이 절친 ‘근심과 걱정’을 하루라도 잊고자 함이 아닐까.
하지만 이 끈덕진 친구는 이별이 무엇인지 모르며,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있는 유일한 친구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근심과 걱정’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일이니 아예 무시하라고 했다. 현대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자인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근심과 걱정’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보고,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유명한 영화 ‘검투사’(Gladiator)에 등장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명상록에서 “우리는 외부 사건을 통제할 수 없지만, 우리의 반응은 통제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이 ‘근심과 걱정’을 없애기 위해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절제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어려서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졸업 후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눈팔지 않고 세월을 보냈다. 이제 좀 은퇴해서 여유를 찾으려니, 자녀 결혼과 건강 문제까지 모두 ‘걱정과 근심’이라는 절친이 또 찾아온다.
삶을 반추하니, 이 나라가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지나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떠들지만, 이를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잊고 있던 ‘계엄’이라는 망령이 되살아나는 미친 세상이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과 거리가 있어 자기들만 생각하는 듯하니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경제는 이미 나락으로 떨어져 가계부채가 1천900조 원에 이르러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 트럼프는 한국 제품에 관세를 물릴 것이라는 소식과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천정부지로 올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불안을 더욱 키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북한군이 참전하고 있는 이 엄중한 상황에 갑자기 45년 전으로 돌아간 계엄군의 국회 진입 소식은 현실감이 사라진 다른 세상에 사는 착각마저 생긴다.
지금 ‘응답하라 1988’의 OST 중 이적이 부른 노래 “걱정하지 말아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사를 읊조리고 싶다. 우리 삶이 ‘무어감수 감어인(無魚甘水 甘於人)’, 즉 ‘결핍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니, ‘걱정, 근심’은 우리의 삶과 무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연말에 ‘근심과 걱정’이라는 오랜 절친은 잠시 잊고, 소중한 가족과 함께 멋진 하루 보내길 희망한다. 삶이 힘들지라도 오늘 하루 정도는 누가 더 많은 돈을 벌거나, 더 좋은 아파트에 살고, 더 좋은 차를 가졌다고 하는 것을 비교하지 않으며, 이상한 나라의 대통령과 정치 이야기의 ‘근심과 걱정’, 오늘 하루 잊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이 추운 날씨에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따뜻하게 누울 자리와 건강한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억지로라도 행복을 느껴야 한다. 예수가 태어난 12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자, 편히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 위로받으며, 지금 ‘걱정과 근심’이라는 절친은 잠시 잊는, 쉼(rest)의 미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간이다.
/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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