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에 의한 과도한 능력 평가는

사회에 부정적 영향이 지대한데

우리 지도층 다수가 이런 모양새다

수능처럼 한순간의 학습능력으로

평생 보장받는 시스템 사라져야

전재학 前 인천 산곡남중 교장
전재학 前 인천 산곡남중 교장

대한민국 초·중·고 12년의 교육시스템은 단 한 번의 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종결된다. 이는 평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학벌체제를 공고히 하며 국시(國是)처럼 떠받드는 시험능력주의의 고착화를 구축한다.

하지만 사람은 인성과 환경에 의해 발달과 성장이 뒤늦게 발현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변화가 무쌍한 청소년기에 수능에 의해 학습능력이 결정되고 이것이 평생의 능력으로 당연시 되는 것은 인간의 학습능력 자체를 무시하거나 무한한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매우 큰 과오이며 인류 발전에 대한 역행이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 사회는 한때 공부의 달인, 공부의 신이라 일컫는 엘리트들이 지속적인 성장·발달의 모습을 견지하기 보다는 한 순간을 넘어서면서 학습능력이 정체되거나 퇴보하여 의당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심지어 역주행을 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이는 지식정보 사회를 살면서 지속해야 할 학습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부작용과 후유증은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각하다. 즉, 학벌에 의한 능력의 과도한 평가는 도처에 부적격자를 양산하고 무지(無知)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이 지대하다. 특히 그가 공인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역량을 발휘해야 할 위치에서는 기댓값에 미치지 못하여 상상 이상의 큰 파장을 일으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구성하는 다수의 엘리트들이 이런 모양새다.

현대는 무한 지식정보의 시대다. 미래학자 버크 민스터 플러는 인류의 지식 총량은 100년마다 두 배씩 증가되었는데, 1900년부터는 25년 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현재는 13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하며, 2030년대에는 3일마다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지식 두 배 증가 곡선(Knowledge Doubling Curve)’ 이론을 주장했다. 요컨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지식 총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결국 이 말은 일생동안 지속적인 학습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멀어지거나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묵과할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권력에의 맹종과 교묘한 법 기술의 적용, 기득권의 수호에 따른 집단이득 등이 도처에서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작동시키고 있다. 이는 곧 세심하고 지속적인 학습능력의 성장이 없이도 지속가능하다. 상호 간의 학연, 지연, 인연으로 이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드러나기 마련인 세상의 통념처럼 우리 사회의 권력층과 지도층의 끼리끼리 감싸기는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기대만큼 실력이 없는 빈껍데기로 자리를 차지하고 세상의 민심을 잠재우려는 그들의 행태가 실망 그 자체이다.

현대인은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또한 ‘배워서 남 주자’는 이타적인 철학도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세계의 명문대학들은 ‘이타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와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고 공동체에 이로운 존재로 살아가려면 공부는 평생에 걸쳐 중단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식 두 배 증가 곡선이 보여주듯이 이 세상은 끊임없는 학습능력의 배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에 역행하는 경우는 자신의 불행을 넘어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해 공동체에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된다.

한 개인, 특정 집단으로 인해 사회, 국가, 인류공동체에 해악(害惡)을 끼치거나 문명이 퇴보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고 불행하다. 이제 우리 교육이 한 순간의 학습능력으로 평생을 보장하는 인재 양성의 교육적·사회적 시스템을 시급히 전환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외침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사회에 쭉정이가 아닌 알곡과 같은 존재를 갈망하는 마음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현실이다.

/전재학 前 인천 산곡남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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