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선생님이 ‘난쏘공’을 쓸 수밖에 없게 했던 ‘계엄’이 다시 왔고 응원봉을 든 학생들이 탄핵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지긋이 미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닿아 있으므로 답을 내고 말아야 할 질문들이 오늘 거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조세희 선생님! 저는 1980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에서부터 멈칫댔습니다. 질문다운 질문이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교실에서 질문은 교사에게만 주어진 권력이었고 학생은 대답만 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다고 저희들이 눈만 껌뻑거리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사회라는 게 있기나 했었는지 모르지만 간간이 들리는 풍문만으로도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라가 입을 통제해도 소문에 예민한 귀마저 닫아걸지는 못했었나 봅니다. 황석영의 ‘가객’에서 혀는 잘려도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배우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답들이 감춰둔 세상 곳곳을 소설이 찾아 알려주었습니다. 그해였는지 그 다음 해였는지 기억이 가뭇합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신의 존재를 질문하도록 자극했습니다. 신과 맞서며 인간이 쓸 수 있는 수단은 물음이었습니다. 회의하고 묻는 일, 김성동의 ‘만다라’에서는 기행마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 있다는 어렴풋한 깨달음과 만났습니다. 벅찼습니다. 교실에서 교실 바깥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비상구를 소설이 던진 질문이 열어주었습니다. 작가들이 던진 질문의 높이에 닿아 보려고 바둥거렸습니다. 제 나름 찾은 답 속에서 한껏 부풀었습니다. 영혼에 키가 있다면 그 키를 소설이 키워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은 달랐습니다. 상징이면서 현실이었고 문학이면서 철학이었습니다. 이제야 글로써 볼 엄두를 내지만 당시에는 문장들 사이에서 가다서다만 되풀이했습니다. ‘만다라’의 ‘병 속의 새’는 풀지 못해도 기죽지 않을 경지를 물었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홀로 고투하는 지상의 인간이 하늘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였기에 넘길 수 있었습니다. ‘뫼비우스의 띠’는 지상에서 일어난 구조의 문제였고 너와 나가 얽힌 관계의 문제였습니다. 연작 소설 한 편 한 편이 질문이 질문을 부르면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았습니다. 혼자서 끙끙댄다고 풀릴 리 없는 현실 속의 과제였습니다. 종이를 찢어 띠 모양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볼수록 생각이 엉켰습니다. 신이나 깨달음과 같은 질문에 들어있지 않은 새로운 질문들을 계속 만났습니다. 어렴풋이 저와 제 곁의 삶이 잇닿으며 만들어 놓은 사회라는 게 보였습니다.

은강과 제가 살고 있던 인천 만수동 사이 격차를 재 보았습니다. 난장이 아닌 제 아버지가 사회에서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지 돌아봤습니다. 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쉽지 않은지 더듬더듬 알아나갔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은 천국과 지옥을 은유로 등장시켜 기어코 가난한 이웃에 눈길이 가닿게 했습니다. 정답을 찾는 문제풀이가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제 자체를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관찰자가 아니라 풀섶을 헤쳐가는 당사자가 되어 문제 속으로 진입하게 이끌었습니다. 독자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비로소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선생님처럼 거리로 나가야 답의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세희 선생님! 저도 거리에서 1990년대를 살았습니다. 선생님의 사진, ‘침묵의 뿌리’를 응시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보면서 선생님의 질문을 알아들었습니다. 침묵만큼 무서운 말씀이 없다는 답이 저를 일깨웠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카메라를 멘 선생님을 자주 뵈었습니다. 인사를 건네면 쑥스러운 듯 받아주셨습니다. 우리 곁에서 조세희가 우리를 찍고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난쏘공’을 쓸 수밖에 없게 했던 ‘계엄’이 다시 왔고 오늘 거리에는 응원봉을 든 학생들이 탄핵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지긋이 미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조세희에 빙의되듯 질문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굴뚝 청소부들 얼굴을 씻겨주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까?” 우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닿아 있으므로 답을 내고 말아야 할 질문들이 오늘 거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그 질문입니다.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