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시대가 변화했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된다는 압박 받아
모든 것을 내어 주었던 세대와
모든것이 정산돼야 하는 세대가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2024년도 마지막 달이 되어 곧 연말정산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 연말정산의 뜻을 찾아보니 ‘급여소득에서 원천징수한 세액의 과부족을 연말에 정산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여러분은 연말정산을 하고 난 후에 어떠십니까? 연말정산 후에 환급 받는 금액이 있는 지에 따라서 괜히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칼럼에서는 연말정산이라는 것이 경제적인 것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중반쯤에는 인간관계에서도 정산이 한 번 필요한 것이 아닌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간은 생애 초기에는 가족과 처음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그런데 이 인간관계는 다른 어떠한 관계보다 매우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녀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자녀에게 일정 금액을 매달 소비하고 양육을 한다. 그러다가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가더라도 “너를 양육하느라 그동안 얼마의 돈이 들었으니 갚아라”라고 말하는 부모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이 부분을 억울해 할 수도 없는 것이 어떠한 자녀도 자신을 그 집에 가족이 되도록 낳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자녀에게 투자를 많이 했는데 운이 좋으면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좋은 관계를 맺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부모자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분 주변에 부모자녀 관계 말고도 이러한 관계가 있습니까? 부모와 자녀 관계는 한 인간이 맺는 관계 중에서 어쩌면 가장 정산이 안 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부모는 자녀와의 정산 과정을 굳이 거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자녀가 있으신 많은 부모님들이 이 부분에서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또 다른 관계를 살펴보자.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득실을 따지는 관계라 볼 수 있다. 이전에만 해도 ‘가족 같은 회사’의 슬로건을 건 회사들이 적지 않았다. 가족처럼 함께 일하며 밤도 새고 집안을 일으키는 것처럼 회사를 일으켜보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문구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슬로건으로 인해 많은 조직이 단기간에 큰 성과를 이루어냈고 그것이 현재의 경제적 안락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직장은 직장이지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IMF와 코로나19 사태 등의 불황기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소위 ‘갑질’이라는 용어자체가 금기어가 될만큼 사라지고 있고, 개인의 목소리와 복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시점이라 볼 수 있다. 만약에 직장에서 누군가가 “주말에는 등산하면서 워크숍을 해볼까?”라고 의견을 낸다면 아마 다수의 직원들이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야죠”라는 의견이 돌아올 것이 분명한 시대이다. 이전의 가족과도 같았던 직장 문화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산이 안 되는 관계에 이 또한 포함되지 않았을 것인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정산이 안되는 관계가 있었기에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이것이 과연 옳았는가 그릇되었던 것인가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하기에는 그 무게가 있다. 한편, 최근 커플들이 데이트 비용을 쓰거나 맞벌이 부부가 생활비를 나누는 과정에 대해 들리는 이야기는 엑셀파일에 자신들이 쓴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십원단위까지도 나눠서 각자 지불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저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는 시대가 변화했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소위 정산이 되지 않는 인간관계만을 맺어왔던 세대와 모든 것이 정산이 되어야 하는 세대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번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인간관계도 정산이 되어야한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글을 다 쓰고 보니 나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 현명하게 정산할 수 있을까?
/정명규 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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