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었던 지난 14일 국회 앞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열차 안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사히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던 차에 열차가 급정거하면서 승객들이 우르르 한쪽으로 쏠렸다.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의 몸도 뒤로 기울어졌고 그의 손목을 서둘러 붙잡았다. 짧은 순간 ‘안도’와 ‘감사’의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평소처럼 휴대전화만 봤다면 도와주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밀집도가 높아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다행이었다. 어떤 비극을 경험한 뒤 학습된 반응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친구들과 만났다. 반짝거리는 각자의 응원봉도 함께였다. 응원봉이 없었던 내게 한 친구가 “대학 신입생이었던 2016년에 썼던 건데 다시 쓸 줄은 몰랐다”며 챙겨온 LED 촛불을 손에 쥐여줬다. 작게 빛을 내는 그 촛불이 왠지 든든했다. 앞선 사람들이 광장에서 수없이 외쳤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작품 ‘소년이 온다’를 통해 던진 질문들이 탄핵 표결을 앞두고 국회 앞 광장에 울려 퍼졌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이 질문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쩌면 오래 간직한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비극을 취재하고 기록하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장례식에서 만난 유족의 비통함을, 안타깝게 죽은 이의 사연을 기삿거리로 다루어야 한다. 가끔은 매일 누군가의 불행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닥친 불행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비극을 기록해나갈 것인가. 그 답을 이 질문에서 찾아보려 한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