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https://wimg.kyeongin.com/news/cms/2024/12/22/news-p.v1.20241222.f8bb98f2e0f740ab95e6327accae3d0d_P3.webp)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전 세탁소를 한달만에 들렀습니다. 꼬질꼬질해진 아이들 패딩점퍼를 정성스레 빨았고, 오랜만에 아이들과 쇼핑을 갔답니다. 일상이 있음을 순간순간 느꼈지요. 병원도 다녀왔고, 네일숍도 다녀왔네요.
마음이 평화로웠습니다. 느닷없이 제 출입처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아직 거기에 있었다면, 지금 이 행복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항하는 시민과 군대가 충돌하고 사회는 갈등으로 지금보다 더 두쪽이 났을 것입니다. 생을 건 저항에 나서지도 못하는 소시민인 저는 정신이 두쪽났을 테니 우리 가정은 온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침대에 누워 아무런 갈등이 없다는 것이, 햇빛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났습니다.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행복의 전제조건은 ‘평화’입니다.
저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일상을 지켜냈다는데 대해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구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은 그날 그 어둠이 엄습하던 밤, 작동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행한 일이었습니다. 87헌법을 구현해 내는 것은 사람이지 문자(文字)가 아닙니다. 체면치레하지 않고 담장을 넘어들어온 의원 중에는 얼굴에, 허리에, 등에 상처가 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국회 앞에서 술자리하다 뛰어들어온 보좌관들, 당직자들, 기자들 모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황에서도 가슴에 박힌 5·18의 아픔이 밀어내는 힘으로 그 자리에 있던 것입니다. 군인들은 달랐을까요. 그들도 87체제에서 자란 대한의 젊은이들입니다.
모두가 87헌법아래 살고 있는데, 단 한 부류만 흐름의 바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동안 국민의힘을 취재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취재 기자들은 하나같이 물었습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위헌이냐, 내란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겠다는 국민의힘을 야당이 국정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데 개헌을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냐 등등. 저는 취재하다 ‘고구마 천개는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국민의힘은 왜 그럴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재준 의원으로부터 얻었습니다. 지역구의 의견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또 윤상현 의원한테 얻었습니다. 이 분노도 1년 정도 지나면 다 잊혀져 용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남, 영남, 경기도, 인천의 특정지역에서만큼은 절대적 선택의 기준이 돼 버린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가 ‘누구에 대한 의리냐’고 물어도 ‘(국민이 아닌)대통령에 대한 의리’라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또 기자간담회에서 ‘계엄은 잘못인데, 위헌인지는 사법부가 판단할 일’이라는 말장난을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지역 유권자만큼은 붉은 색 외의 선택지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야가 웬만큼 싸울 때는 균형을 맞춰 써야 한다는 주문 때문에 기자 판단과 다르게 양쪽의 주장을 균형있게 맞춰 싣습니다. 기자가 모든 사안의 전모를 알아 판정승을 내릴 만큼 전문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밑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내란은 다릅니다. 정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든 국민의 일상을 앗아가도 좋다는 권력이 헌법에 있기는 합니까. 그런 선택을 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아직 국민의힘의 입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선호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 가치 수호에는 의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일의 단죄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번 만큼은 1년 뒤엔 잊어주는 너그러운 유권자가 아니길 바랍니다.
/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