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통치행위, 사법심사에 제한적
대법 ‘국헌문란’ 비상계엄 심사대상
재판관 개인 종교나 신념·사상 아닌
‘헌법’의 이름으로 준엄한 단죄 필요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 담아 판단해야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 등이 12·3 비상계엄을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절차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 본래 통치행위는 국가 행위 중에서 고도의 정치성을 갖기 때문에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사법심사가 제한되는 행위를 말한다. 학설은 나뉜다. 부정설은 실질적 법치주의 확립과 재판청구권 일반적 보장을 위해 통치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긍정설은 민주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 책임성 없는 법원은 사법심사를 할 수 없다거나, 사법심사가 가능하나 사법의 정치화를 방지하기 위해 자제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미국에서는 통치행위를 ‘정치문제’라고 한다. 정치문제란 법원이 위헌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 해결이 입법부 또는 행정부의 독점적 심사 권한에 속하거나 적절한 사법심사의 기준이 없거나 법원 판결의 집행력을 보증할 수 없는 경우이다. 공화제 정부형태 조항, 선거 절차, 외교적 대외정책, 의회의 내부절차 규율권 등이 그 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하지만, 사법심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판례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외국으로의 국군 파견 결정 등에서 통치행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의 대북송금 행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수도이전 등에서는 통치행위를 부정했다.
학설과 판례가 근원적으로 통치행위를 부정하지 못한 배경에는 남북한의 대치와 전쟁 같은 국가적 위기를 즉각 대처해야 하는 현실적 요구가 있다. 그것이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권이다. 그렇다면 비상계엄선포는 사법심사의 대상인가. 대법원은 비상계엄선포가 국헌문란 목적으로 행해진 때에는 사법심사 대상이라고 했다. 1980년 5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조치가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던 논거다. 12·3.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헌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위반한 것으로 보아 탄핵소추가 진행 중이다.
탄핵심판제도는 의회가 군주를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14세기 말 영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이 탄핵심판제도를 도입한 것은 국왕과 법관의 경우 의회를 비롯한 다른 헌법기관이 책임을 추궁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787년 미국 헌법에 도입된 이후 프랑스 헌법과 독일 헌법 등에도 도입되었다. 우리 헌법도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위반이나 법률위반에 대하여 탄핵소추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고위공직자에 의한 헌법위반을 경고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하며, 국민에 의하여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다시 그 권한을 박탈하는 기능을 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공직자가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을 위반한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탄핵심판절차의 목적과 기능이라고 했다. 우리는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범한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자위적 쿠데타를 전 세계인과 함께 실시간으로 보았다. 국민은 헌법에 따라 9인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헌법적 판단을 위임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관은 선출된 기관이 아니라 임명된 기관이다. 재판관의 헌법해석과 판단은 개인적 종교나 신념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헌법정신에 기초해야 한다. 헌법이 왜 비상계엄을 규정했는지. 무엇때문에 그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지. 헌법을 파괴하려고 한 자들에 대해 국민은 헌법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단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헌법이 정한 절차대로 3인의 재판관이 조속히 임명되고 탄핵 절차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헌법은 살아 있는 나무와 같다. 우리 헌법의 뿌리는 민주공화국이며 그 나무는 기본권이 존중되고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헌법의 근원을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담아 판단해야 한다. 헌법재판관들은 최종적인 헌법 수호자가 국민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국민이 혹독한 겨울, 왜 광장에 다시 서 있는가를 모두가 직시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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