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국민, 비상계엄 정치적 혐오
87년 헌법, 제왕적 대통령제 약화
적극적인 정의보다 소극적 방식
대통령·거대야당, 이중권력 구도
합리적인 국민들이 해답 찾을 것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령과 그에 이은 의회의 탄핵이 낳은 소용돌이에 온 사회가 휩쓸리고 있다. 대통령은 다른 모든 영역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면서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른바 원포인트 비상계엄으로 한국사회를 정상화하려 했다는 뜻을 밝혔던 반면, 야당 등 반대세력은 대통령의 내란을 징치하고 탄핵과 더불어 조기 대선으로 정치체제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소 복잡하다. 첫째 이 소용돌이의 근원에는 대통령의 행정권력과 야당 주도의 의회권력 간의 권력경쟁이 자리한다. 둘째 세력구성, 정책 비전, 지지동원 등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양대 정치세력이 충돌하고 있다. 셋째 표방하는 정치체제는 불명확하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와 그 바깥의 체제 간의 충돌이기도 하다. 넷째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적 지정학 때문에 불명확하게 드러내지만 북한을 포함한 국가간 동맹체제의 이질적 구상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정치는 이러한 복합적인 권력경쟁의 합리적 조정과 실현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감성적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따라서 설사 봉합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양상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비상계엄에 대한 정치적 혐오·거부와 그에 따른 탄핵의 정당성을 지지한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계엄령은 1979~1980년 사이의 대통령 사망, 12·12쿠데타, 1980년 서울의 봄,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군부권위주의 체제의 붕괴와 복원의 와중에서 진행되었다. 그 역사적 경험은 계엄령의 이미지를 군부지배세력의 폭력과 민주화 요구의 압살, 그리고 지배와 기득권의 동요와 재구축, 그리고 피지배 소외세력의 배제 이미지로 채색되었다. 나름 설득력 있는 대통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기성 세대의 독재 트라우마와 신세대의 자유박탈 공포심에 의해 전면적인 거부감을 낳고 있다. 즉, 1980년 이후 40년 넘게 진전된 한국의 자유화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여전히 권위주의 정권과 군부의 폭력동원을 기억해낸다. 과거의 계엄령이 전혀 먹힐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대통령의 주취가 낳은 실수라든가, 민주화된 군부 내의 명령불복종 및 저항으로 해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미 오래전에 97%의 국민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 레거시 미디어를 넘어서는 유튜브와 SNS, 2천550만대의 자동차를 보유한 나라에서 전격적인 군사전략이 필요한 과거와 같은 군사쿠데타나 비상계엄령이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제도로서의 1987년 헌법 역시 구권위주의체제에 대한 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권과 자유, 법치주의, 삼권분립 등에 대한 적극적인 정의로 구성되었다기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약화시키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인다. 이 헌정체제는 대통령과 다수여당체제 하에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여소야대의 구도 하에서는 분쟁적이기 마련이었다. 나아가 대통령과 지배적 거대야당이 충돌하면 어떤 조정도 불가능하면서 일종의 이중권력이 만들어지곤 했다. 3당 합당과 같은 해결책도 거대 양당의 진영간 대립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대통령 권력과 거대야당 권력이 상호 관용하지 못하고 제도적 권력을 자제하지 않는 경우에는 충돌과 국가 마비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의회의 온갖 탄핵과 무한 입법에 대응하여 대통령은 국회해산권 없이 의회를 견제해야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군부권위주의의 원인을 찾았던 민주화 헌법은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이라는 소극적 권한과 ‘비상계엄권’이라는 적극적 권한을 합법적 권한으로 부여했지만 의회를 견제하기에는 미흡하거나 무용하였다. 실제로 현재의 헌법은 45년 동안 벌써 3차례의 탄핵을 거치면서 의회와 대통령이 충돌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현행 헌법의 한계는 단임제나 대통령제가 아닐 수 있다. 즉, 4년 중임제나 의원내각제 등의 개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선한 국민이 만들어내는 민주주의라도 일방의 독주를 견제하는 권력분립의 실질적 내실화가 그 해답일 수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국민들이 대증적 미봉책이 아닌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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