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러진 총체예술 가무악희 네장르 자리매김
내년 예술창작 지원사업서 사라진 전통예술
인천 전통예술인 성숙한태도 재공모 이뤄내
앞으로 ‘다원예술’로 색다르게 성장해나갈 것
우륵(于勒)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사람이다. 가야가 망하자 신라에 망명한다. 진흥왕은 국원경(충주)에 머물며 세 명의 제자를 가르치게 한다. 우륵은 계고(階古)에겐 가야금, 법지(法知)에겐 노래, 만덕(萬德)에겐 춤을 가르쳤다. 그것만 가르친 게 아니라 그것을 중심으로 두루 통달하게 한 셈이다. 우륵의 세 제자는 이렇듯 가야의 가무악(歌舞樂)을 잘 익혔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신라의 가무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륵은 처음엔 격노했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가무악을 보고 감동해서 이렇게 말했다. ‘락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로다.’ 즐거움이 지나쳐서 흘러넘치지 않고, 슬픔이 지나쳐서 비탄에 빠지지 않는구나.
이 땅의 전통예술은 이렇게 가무악이 어우러진 총체예술로 발전해왔다. 음악, 무용, 연극을 엄밀하게 구분했던 서구적인 전통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전통예술은 가무악희의 네 장르로 확연하게 자리매김했다. 연희의 성장이 눈부시다. 젊은이들의 농악, 탈춤, 무속, 남사당의 전문 기예를 기반으로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이 땅에서 존재하는 연희와도 다르다. 또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행하는 공연들과도 다르다. 연극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연희는 매우 다른 매력적인 장르로 인식하게 된다.
가무악희를 기반으로 해서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한국의 전통예술은 매우 독특한데, 최근 인천문화재단에선 잠시 ‘전통예술의 독립적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2025년 예술창작 지원사업에서 전통예술이 장르(분야)에서 사라졌다. 전통예술을 하나의 분야(장르)로 설정하지 않고 음악, 무용, 연극의 하위로 분류했다. 인천의 전통예술인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지금 인천에서 활약하는 계고, 법지, 만덕은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이런 공고의 부당함을 먼저 알았겠지만 비분강개하지 않았다. 어쩌면 인천의 전통예술인은 이번이야말로 전통예술의 고유한 특성을 널리 알릴 좋은 기회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음악 분야에 국악이 하위로 들어가는 것이 부당하며, 연극과 연희가 얼마나 다른 장르임을 알려주었다. 인천문화재단에도 박수를 보내려 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신속히 재공고를 냈다.
궁중의 연례(宴禮)에서 민간의 무속(巫俗)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통예술은 복합 장르적 속성이 강하다. 음악, 무용, 연극으로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을뿐더러 이 시대의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데 구속이 되고 방해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지난 세기 전통예술의 선각자들은 일찍이 이렇게 실천해왔다. 올해는 한성준(1874~1941) 탄생 150주년으로 전국적으로 학술대회와 공연이 이어졌다. 가장 큰 소득은 그동안 명무 혹은 명고로만 알려진 한성준은 ‘전통적 가무악희를 극장 공간을 통해서 융합적으로 보여준 선각자’라는 걸 알린 것이다. 한성준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기획자이자 연출가로서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지금 인천에는 한성준에 버금가는 기획가, 연출가가 존재한다. 그들에 의해서 인천의 전통예술이 더욱 빛나게 될 날이 곧 오리라. 인천문화재단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그런 날은 더 빨리 현실이 되리라. 인천은 전통예술과 관련 다양한 인프라를 보유한 도시다. 기획에서 홍보까지 연희에서 연주까지, 인천의 전통예술을 빛낼 능력자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인천의 전통예술은 앞으로 이들에 의해서 ‘다원예술’로 색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 전화위복은 이럴 때 써도 좋지 않을까. 이번 재공모를 이뤄낸 인천의 전통예술인이 자랑스럽다. 인천은 일찍이 전통예술의 도시였다. 1920년 인천의 지식인들은 이우구락부(以友俱樂部)를 조직했다.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국악기를 하나씩 배움으로써 민족정신을 일깨우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인천에는 ‘부평풍물대축제’라는 전통예술의 단일한 종목(농악)을 바탕으로 한 총체적인 축제가 존재한다. 인천은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 또한 ‘전통예술의 도시’일 것이다.
/윤중강 국악평론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