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용인동부경찰서 수사1과 경사
이재형 용인동부경찰서 수사1과 경사

타인의 돈을 표적으로 한 재산범죄자들에게 인터넷은 날개를 달아준 것 같다. 범행 대상의 선택폭이 극대화됐고 이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속이고 돈을 가로챌 수 있게 됐다. SNS로 이성에게 접근해 금전을 편취하는 로맨스 스캠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중동에 파병된 미군이다’, ‘홍콩에 사는 미국계 중국인이고 직업은 의사다’ 등 다른 나라에 있는 이들(사기꾼)은 처음엔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한국이 좋고 한국에 관심이 생겨서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한다. 번역기를 이용해 표기되는 한글 대화체가 어수룩하면서도 대화의 내용에서 애정이 느껴지게 한다. 간밤에 잠을 잘잤냐는 인사와 뭘 먹었냐는 이야기, 요즘 OTT에서 뭐가 재밌더라는 이야기, 좋은 꿈을 꾸라는 마무리 인사까지 나름의 ‘빌드업’을 차근차근 진행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돈 이야기를 시작한다. 근무 중 큰 보물을 발견했다는 군인도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많다는 이들도 있다. 한국에 있는 이들에게 ‘부’의 일부를 나눠주겠다고 한다. 이 배송에는 특별비용이 요구된다. “내가 미군 장성인데 A장교가 보내는 이 품목을 안전하게 받으려면 비용을 내야 한다”, “세관국인데 B씨가 보내는 물품에 문제가 있으니 비용을 지불하고 받아가라” 등의 이유로 새로운 인물과 업체가 대화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저런 말에 속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맨스 스캠의 대상이 우리 주변에는 없을 것이라 단정하면 안 된다. 수사관으로서 느낀 로맨스 스캠 피해의 근본적 원인은 ‘사랑의 부재’였다. 그 틈을 사기꾼들이 깊게 파고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는 일이 로맨스 스캠 피해를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사기꾼들의 농간에 화가 났던 동시에,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빠이고 배우자였던 사건 속 피해자들에게 주위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우선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재형 용인동부경찰서 수사1과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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