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명 중 한명 자녀·부모 동시 부양

은퇴 이후의 삶 준비 아닌 고민커져

어찌보면 자랑스럽지만 서글프기도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세대

“충분히 잘 살았다”고 말씀드리고파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언제부터인가 ‘58년 개띠’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출생자 수가 가장 많은 해가 1958년인 데다가 ‘개’라는 단어의 상징성이 더해져 탄생한 용어인 듯합니다.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부터 ‘58년 개띠’는 벌써 산업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구로공단’, ‘주경야독’, ‘공돌이’ 같은 말들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들이지요. 그들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넘어 때로는 가정경제를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386세대’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일컫는 말이었지요. 이 단어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486’을 거쳐 ‘586’으로 진화했습니다. 이제는 은퇴 위기에 몰려있는 세대를 상징하기도 하지요.

전에는 ‘58년 개띠’ 세대와 ‘586’ 세대를 합쳐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지요. 바로 ‘마처세대’입니다. 부모님을 부양하는 ‘마’지막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지요. 어찌 보면 자랑스럽고, 어찌 보면 좀 서글프기도 합니다. 부모님을 부양한다는 면에서,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자랑스럽습니다. 어렵게 사시면서 자식 잘되는 것에 인생을 다 바치신 늙으신 부모님을 돌보아드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지요. 능력이 되어 아이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그런데 마처세대라는 말에는 서글픔 혹은 불안도 묻어 있습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마처세대 네 명 중 한 명은 자녀와 부모님을 동시에 부양하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예전이라면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제2의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요. 하지만 취업이 어디 만만한가요. 재취업을 하게 되면 임금은 60%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비정규직이 대세이지요. 그러다 보니 앞다투어 자격증을 수집하기도 합니다.

어느날 퇴직을 앞둔 아버지가 고3이 되는 아들을 불러 조용히 얘기했습니다. “아빠도 정년이 되어 퇴직해야 한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더 이상 불러주는 곳도 없다. 퇴직하면 고정적인 수입이 없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수험생활을 내년으로 끝내야 한다. 재수는 없다. 알겠지?” 아들을 대학까지만 보내면 한시름 놓을 거란 생각으로 심각한 얘기를 한 것이지요. 갑작스런 아버지의 진지한 말에 비장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아들이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대답했습니다. “괜찮아. 아빠라면 퇴직하더라도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열심히 하면 돼. 힘내!” 무슨 뜻일까요. 혹시 아버지가 현직장에서 퇴직하더라도 은퇴는 안된다는 뜻 아닐까요.

예전에는 길어봐야 20대 후반 정도면 자녀에 대한 부양이 끝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취업하면 부양의무가 끝난 것으로 생각했지요. 결혼한 자녀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능력이 되는 선에서 의무가 아닌 권리였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요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바로 들어가는 일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재수는 필수, 3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이런 현상을 상징하지요. 대학도 4년만에 졸업하지 않습니다. 어학연수도 가고, 인턴도 하면서 최소한 5~6년은 걸려야 졸업을 하지요. 졸업 후에도 취업 재수, 3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40세가 넘어 결혼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독신으로 사는 자녀들도 제법 있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자녀들이 20대 후반이면 끝났던 부양기간이 대폭 늘어났다고 합니다. 몇 살일까요. 과장을 조금 섞으면 60세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부모 나이 기준이 아닌 자녀 나이 기준입니다. 부모가 죽을 때까지라는 뜻이지요.

‘마처세대’는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를 이끌었습니다. 가정 대신 회사에 충성하면서 자녀들과 제대로 된 추억을 쌓지 못하기도 하였지요. 현재도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대신 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며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분들에게 감히 말씀드립니다. “충분히 잘 사셨습니다. 당신을 추앙합니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