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 배경음악 담당 20여년 근무

수입 괜찮았지만 사글세집 면치 못해

술 속에 살다가 간경화로 세상 떠나

묘지에서 한눈에 보이는 북한산 영봉

수많은 기행 남기며 후배들에 영향

김윤배 시인
김윤배 시인

김종삼(1921~1984) 시인은 후배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시인이다. 그는 수많은 기행을 남겼다. 소학교에 다니는 딸이 소풍 가는 날이었다. 아버지인 김 시인이 딸의 소풍에 따라나섰다. 소풍지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딸은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언덕 뒤에서 큰 돌을 가슴에 얹고 잠이 들어 있었다. 딸은 놀라서 “아버지 왜 그래?”하고 물었다. “응. 하늘이 너무 파래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서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게 김종삼 시인이었다.

그는 동아방송에 다니면서도 매스컴이라면 질색이었다.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써야될 한 신문의 젊은 문학담당 기자가 그의 성격을 알고 시인을 지망하는 문학청년을 가장하여 그를 만났다.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다방 문을 박차고 달아나 버렸다.

김종삼이 잘 다니는 다방은 조선일보 뒤의 아리스였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혼자 나가 앉아 있었다. 싫은 사람이 들어오면 말없이 일어나 나와 버렸다. 찻집에 들어가다가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뒤돌아 나오곤 했다. 그의 형인 김종문 시인은 예비역 준장이었다. 어쩌다 찻집에서 마주치면 “에이 똥 장군”이라고 내뱉고는 돌아서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여서 전봉건 김광림 김영태 시인 등이었다. 술을 몹시 좋아해 자주 마셨지만 술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극히 한정된 인물들이었고 혼자 마시는 일이 더 많았다. 술도 엄청난 폭주였다.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마셨다. 술 마시는 동안은 방송국 일도 하지 않았다. 별난 술버릇을 잘 아는 방송국에서는 그의 술버릇을 눈감아 주었다. 그런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유신 직후 군이 신문사를 점령하고 있을 때 점심 식사를 하며 반주를 하고 들어오는 그를 중무장한 헌병들이 막아섰다. 그는 헌병의 파이버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들어 왔다. 그러고도 별 탈 없이 출근했다. 술 좋아하는 그를 군인들도 알아주었던 것이다.

그는 동아방송에서 배경음악 담당으로 20년 이상 일했다. 수입은 괜찮은 편이었으나 사글세집을 면하지 못했다. 목돈을 모아 집을 마련한다든지 전셋집을 얻는다든지 하는 일은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가난을 의식해보지 못한 것이다. 돈은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그만이었다. 봉급을 타 주머니가 두둑하면 술도 고급한 것을 마시고 옷도 고급한 양복을 사 입었다. 와이셔츠도 명동에 나가 맞춰야 직성이 풀리고 넥타이도 백화점에서 사야 했다. 구두도 시계도 고급이 아니면 걸치지 않았다. 만년필이나 라이터도 불란서 제품이 아니면 쓰지 않았다.

가까이 지내는 후배들에게 용돈도 잘 주었다. 천상병 시인도 그의 단골 고객이었다. 돈이 떨어졌을 거라 생각되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천상병에게 주었다. 천상병의 삶이 늘 마음 아팠던 것이다.

1976년, 동아방송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일정한 수입이 없던 그는 좋아하던 사치도 하지 못하고 곤궁하게 살면서 폭음을 계속했다. 밖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일주일 혹은 보름씩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일 년이 멀다하고 이사를 다녔지만 이사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아내였다. 이사하는 날도 술에 취해서 집을 찾지 못할 정도였다. 술은 그를 쓰러뜨렸다. 10년 쯤 더 술 속에 살다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지에서 보면 북한산 도도한 영봉이 한눈에 보인다.

묘지 옆에는 ‘북치는 소년’이 새겨진 시비가 서 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어린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이라고 노래한 시비다.

김종삼은 포스터 작곡 작사인 흑인 영가 ‘스와니 강’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시가 있다. ‘스와니강 가엔 바람이 불고 있었다/스티븐 포스터의 허리춤에는 먹다 남은/술병이 매달려 있었다/날이 어두워지자//그는 앞서 가고 있었다’.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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