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계엄상황 이끌어가는 자들
권력욕·총칼 지배하는 세상 옹호
대항 아닌 기본적 삶 거부하는 것
민주와 정의, 인권과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정치적 문해력 필요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때면 언제나처럼 우리는 상반된 감정에 빠지게 된다. 많은 경우 아쉬운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와 함께 다가올 시간에 대한 설렘과 결심으로 이때를 맞이한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지만 인간은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를 서사적으로 만들어간다. 서사야말로 인간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 귀중한 시간을 계속되는 제2의 계엄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이 상황의 엄중함과 참혹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거와 처단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전쟁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런 상황을 단지 권력욕으로 가리려 한다. 그들은 어차피 아무런 피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잘 살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정부 인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이 상황을 유지하려는 주류 기득권층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것도 아니면서 한 줌의 연고주의에 따라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여의도에서 광화문과 남태령에서, 또는 그 어느 곳에서 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열망하는 이들과 주류 기득권층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정치적, 문화적 지체 현상이 자리한다. 계엄의 엄중함과 야만은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험한 세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촛불은 꺼질지 모르지만 응원봉은 꺼지지 않는다”고 외치는 이들, 놀이와 저항의 경계를 무너트린 집회는 “탄핵이 되면 이재명이 대통령 된다”는 따위의 정치적 퇴행을 일삼는 한 줌 이권집단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 게다. 일상적 정치를 무시하고 총칼로 지배하는 세상을 옹호하는 자들은 악의 대변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투쟁은 제2의 계엄을 시도하는 무리들, 이런 야만의 예외상태를 지속하길 바라는 무리에 대항하는 싸움이다. 여기에 우리의 삶과 일상, 존재 전체가 걸려있다. 우리는 한 줌의 이권에 자신의 존엄성과 인간다움을 포기한 자들을 거부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이 다시 이 나라의 주류에 자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응원봉의 불빛은 문화적, 사회적 전환을 가져올 빛나는 신호가 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위험이 깊을수록 구원 또한 가까우리”라는 낭만주의의 구호는 지금 가장 절실한 명제가 되고 있다. 작은 이익에 현혹되어 야만과 폭력, 전쟁과 죽음을 옹호하는 세력이 이런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들은 온갖 거짓과 왜곡,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인간다움을 외면하는 반인륜적 세력이다. 이 세력은 결코 정치적 대항 집단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삶을 거부하는 악과 어두움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언어는 철지난 이념적 편협함과 함께 인권과 자유, 평등과 복지를 거부하는 퇴행,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를 불신하고 사회적 혐오를 부추기는 기성 기독교, 주류 언론, 재벌 기업 등 소수의 기득권층을 과잉 대변할 뿐이다.
이런 야만과 퇴행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간의 권리와 자유, 평등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을 향해 결단해야 한다. 이 결단은 지금 정치공학적 셈을 넘어 나의 삶과 존재를, 일상과 문화를 통한 변화 안에서만 가능하다. 깊고 넓은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다시금 그들이 말하듯이 ‘일 년이 지나면 모두 잊게 될 것’이다. 이들 집단의 정신병리학적 한계와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넘어야 한다. 확증편향과 지적 역량의 부족은 지성적 성찰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린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와 정의, 인권과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정치적 문해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단호함과 참여는 우리의 삶과 일상을 지켜내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민주화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이 서사를 ‘지금 여기’에서 온몸으로 드러내면서 삶과 사회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 이를 위한 전환이 절실하다. 계엄집단과 악의 대변자들을, 기득권 카르텔을 바꿔야 한다. 이를 토대로 다가올 새해를 변화의 순간으로 맞이하자. 이를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은 자의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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