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혼돈, 경제·사회적 위기에도

책임지거나 제대로 된 사과도 없어

탄핵 광장 가득 메운 보통의 사람들

시민 목소리로 새로운 세계 쓰여져

민주주의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것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이번 겨울 무릎에 바람이 든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한나절 앉아 있으면 온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지만 긴 시간 추위를 이길 재간이 없다. 그때쯤 되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왜 겨울마다 이러는거야’. 박근혜가 탄핵 되던 그 겨울의 기억이 다 잊히기 전에 또다시 이러다니. 심지어 이번에는 ‘계엄선포’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과거형 군사 반란이 2024년 다시 등장했다. ‘계엄, 내란, 수괴, 사살’ 민주주의와 인권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단어들이 소환되었다. 불과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간에 말이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섰다. 다양한 색의 응원봉과 자신을 드러내는 깃발을 손에 움켜쥐고. 전근대적이고 획일화된 폭력에 맞서 춤을 추고, 노래 부르고, 응원봉을 흔들었다.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모두의 바람이 모인 자리였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섬뜩하다. 국회와 언론기관을 장악하고,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겠다는 계획. 계엄을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한 정황까지. 각 부처 장관, 군대와 경찰, 국정원 등 주요 정부 기관들이 계엄에 연루되었고 작전은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정권 유지를 앞세운 윤석열과 내란동조자들에게 전쟁 위기도, 계엄도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것이 어떤 후과를 가져오는지, 어떤 위기를 초래하는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통령이 탄핵 되고 일부는 구속되어 수사받는 상황에도 ‘고도의 정치행위’라며 뻔뻔하게 변명한다. 오히려 지지 세력 결집을 호소한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옹호하고 당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혼란과 혼돈, 경제·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책임지는 자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도 없다. 내 삶, 일상이 정치인들의 권력과 독단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저들이 말하는 정치에 시민들은 없었다.

그래서, 거리로 향한다. 탄핵 광장을 가득 메운 건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싶어 한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정치의 독단과 횡포가 우리 삶을 흔들어 놓을 수 없도록 저항하고 있다. 남태령 고개에서 농민들과 연결되어 목소리를 높이고, 내란에 동조한 한덕수에게 분노의 목소리를 전한다.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농민, 청소년, 노동자 등 각자의 목소리로 윤석열과 구태 정치가 사라져야 할 이유에 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서로 연결되어야 우리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 전달되는 후원금이, 노동자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곳에 닿는 온기가 그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계엄으로 인해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넘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산 탄핵 집회에서 발언했던 시민의 목소리다.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모두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여성도 장애인도 소수자도 이주민도 노동자도 농민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목소리. 탄핵 후 국회 앞에서 목청 높여 불렀던 ‘다시 만난 세계’처럼 이 겨울, 우리 사회는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었다. 이 세계는 윤석열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윤석열 같은 낡은 정치가 탄생하지 않는 세상이다. 차별이 아닌 평등, 다름이 아닌 연결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세상이다. 2024년, 시민들의 목소리로 민주주의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이렇게 만난 우리의 민주주의는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