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창작산실’ 정부사업 선정
“젠더수행 전복·교란시키는 작품”
1~3세대 총집합… 내달 11일부터
1960년대 초반, 여성국극이 인기를 구가하던 르네상스를 지나 차츰 저물어 가던 시기. 한 소년이 여성국극에 뛰어든다. 그는 최고의 니마이(남역 주연배우를 뜻하는 여성국극 은어)가 되고자 한다. 성별은 여성이지만 기어코 여역을 거부하고 남역만을 고집한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무대에 오른 소년은 과연 시대를 주름잡는 남역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안산 여성국극제작소가 신작 ‘벼개가 된 사나히’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다음 달 11일부터 19일까지 무대에 올린다. 올해 드라마 ‘정년이’로 여성국극이 재조명된 가운데, 또 한번 인기 불씨를 살려낼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고연옥 작가가 극본을 썼으며, 예술계에서 소수자 문제를 조명해온 구자혜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벼개가 된 사나히’는 여성이 모든 배역을 도맡는 여성국극만의 특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왕자와 공주가 사랑에 빠진 뒤 갈등을 맞이하고, 이를 해소한 뒤 결혼으로 이어지는 게 여성국극의 골격이다. 이런 핵심적인 두 역할을 모두 여성이 연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뒤틀고 퀴어성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벼개가 된 사나히’ 속 소년은 이런 특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다.
여성국극 1세대 원로 배우들도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난다. 이소자 배우와 이미자 배우가 왕자 역할을 맡아 관록을 보여줄 예정이다. 3세대 배우인 박수빈 대표는 주인공 ‘소년’으로 분하며 황지영 배우, 김미영 배우 등 여성국극제작소 단원들도 참여한다. 아울러 소리꾼 강다인, 싱어송라이터 이주영도 출연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창작산실) 선정 작품이다. 창작산실은 연극·창작뮤지컬·무용·음악·창작오페라·전통예술 등 기초 공연예술분야에서 우수 신작을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제작부터 유통까지 단계별로 지원이 이뤄져 작품성 높은 창작물들이 무대에 올라 빛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박수빈 대표는 “여성국극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여성 예인들이 주도해 만든 장르다. 당시 동시대를 적극 반영해 대중성을 얻고 그 시대의 문화가 됐다. 여성국극제작소는 이런 여성국극의 복원과 계승을 통해 현재와 연결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며 “‘벼개가 된 사나히’는 젠더수행을 전복하고 교란시키며 세대와 계급의 경계를 흔드는 작품이다. 여성국극제작소의 벽을 허무는 중요한 한걸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벼개가 된 사나히’와 함께 창작산실로 선정돼 다음 달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기존의 인형들 : 인형의 텍스트’, ‘무명호걸’, ‘오셀로의 재심’, ‘당신을 배송합니다’, ‘목련풍선’ 등 6편이다. 여성국극을 비롯해 인형극, 고전을 재해석한 창작뮤지컬, 사회문제를 다룬 무용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예매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홈페이지와 인터파크에서 할 수 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