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호화로운 동산 같았으나

어진 문왕은 백성들과 즐기지만

폭군 걸왕은 비난받는 장소이기도

청와대 버리고 용산행 순간부터

함께 즐겨줄 사람 아무도 없어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최종의 결론이야 아직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서 직무정지 상태에 있고, 사직당국은 내란의 우두머리라는 죄의 사실로 수사하고 재판하는 일이 진행될 터이니, 사실상 대통령은 망했다고 볼 수 있다. 설혹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지 않더라도 내란 우두머리라는 죄의 사실이 무혐의로 처리될 수 없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맹자’를 보면 왜 임금이 망해 나라가 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열거돼 있다. 양혜왕이 맹자를 초빙해 자신의 휴양지이자 아름다운 동산인 원유(園囿)에서 함께 산책했다. 이 동산은 임금이 신하들과 사냥을 즐기고 미녀들의 수발을 받으며 향기로운 음식으로 향락을 즐기는 곳이기도 했다. 마침 그날, 정원과 연못에는 화초가 잘 가꾸어졌고 공중에는 기러기들이 날고 숲에서는 사슴과 고라니들이 뛰어다니는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호화찬란한 동산을 지니는 즐거움에 만족하던 혜왕이 맹자같은 현자(賢者)들도 이런 쾌락을 즐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답하는 맹자의 이야기에서 깊은 뜻을 알아차릴 수 있다.

쉽게 줄여서 이야기하면, 참다운 현자라야만 아름다운 동산에서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나 당신 같은 잘못된 임금은 그런 즐거움을 느껴서도 안 되지만 느낄 수도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역사적 예를 들어 혜왕의 잘못을 크게 꾸짖는 말을 했다. 바로 문왕과 걸왕의 이야기였다. “문왕이 원유인 영대(靈臺)를 만들 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달려들어 속히 완성했네. 정원에 사슴이 뛰놀고 새하얀 백조들이 아름답기도 하구나. 임금이 연못가를 걸으니 물고기도 기뻐서 뛰노는구나”라는 ‘시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주나라의 기초를 닦은 어진 문왕은 그런 찬양을 받았으나, 학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원망을 듣다가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든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왕의 행적을 기록한 ‘서경’의 구절을 대비하였다. “저 하늘의 해는 없어지지도 않는가(時日曷喪) 그렇게 죽기가 싫다면 나와 함께라도 죽자(予及女偕亡)”라고 말해서, 잘하는 임금에 대한 찬양과 함께 망국의 임금은 나와 함께라도 죽자고 원하는 임금의 불행을 열거했다.

폭정으로 악명 높던 걸왕은 아무리 잘못한 일을 하면서도 사과나 반성은 하지 않고 자신을 태양에 비교하면서 ‘저 밝은 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자신 또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큰 소리치고 살았기에 백성들이 ‘저놈의 해 없어지기 싫다면 나와 함께라도 죽자’고 했다는 이야기니 기가 막힌 말이 아닌가. 문왕의 동산과 걸왕의 동산은 그 아름답고 호화로움이야 같았으나 그 주인공에 따라 참으로 즐거운 장소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비난받는 동산이기도 했다. 문왕같은 어진 임금이야 ‘백성들과는 함께 즐겼기 때문에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與民偕樂故能樂也)’. 그러나 독재자요 탐학한 걸왕은 백성을 괴롭히고 혼자만 즐기니 누가 그 즐거움을 함께하며 찬양할 수 있었겠는가.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고 내란의 우두머리라고 수사받는 오늘의 임금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청와대를 버리고 국민 누구도 찬성하지 않는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기는 순간부터 함께 즐겨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엄청난 국비를 낭비하면서 새 대통령실로 왜 옮겨야 했을까.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같은 어진 정치가도 나왔는데 그 터가 뭐가 문제라고 강제 이사를 해야 했던 것인가. ‘바이든’ ‘날리면’의 거짓말을 시작으로 그 많은 거짓말, ‘장모는 남에게 동전 한 푼 손해 끼친 적이 없다’ ‘아내는 손해만 보고 관계하지 않았다’는 등 새빨간 거짓말로 계속 국민을 속이기만 했다. 그 엄청난 국비를 낭비하면서 아내의 패션을 자랑하려는 듯 외국만 순방한 이유는 무엇인가. 159명의 무고한 백성들이 압사한 사고에도 국민생명을 보호할 책임자가 사과 한마디 한 적 없었다. 입만 열면 선제타격 주장하며 전쟁 위기만 조장하고 백성을 불안하게 했다. 마침내 백성들이 퇴진하라니 계엄으로 내란을 일으켰다. 망하기 싫으면 나와 함께라도 망하기를 바라던 맹자의 뜻이 새삼스럽다.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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